2026년 3월 1일 일요일

“저긴 천국이네”…집에서 삶 마감 가능한 일본 시스템 [.txt]

“저긴 천국이네”…집에서 삶 마감 가능한 일본 시스템 [.txt]

“저긴 천국이네”…집에서 삶 마감 가능한 일본 시스템 [.txt]

입력
수정2026.02.21. 오전 10:06
기사원문
김희경의 에이징북
가족의 임종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살던 집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이다. 사진은 쾌적한 거실에서 와병 중인 아내의 체온을 재고 대화를 나누는 남편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의 임종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살던 집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이다. 사진은 쾌적한 거실에서 와병 중인 아내의 체온을 재고 대화를 나누는 남편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복 중에 제일 큰 복은 뭐니 뭐니 해도 죽음 복이여.”

입퇴원을 반복하며 와병 중인 아버지 면회를 다녀올 때마다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살아서 겪는 일들은 어떻게든 감당하면 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자신의 의지 소관 밖이니 운에 좌우되는 일이고, 긴 와병과 입원 없는 죽음이 가장 큰 복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얼마 전 내가 친구의 모친상에 다녀온 뒤, 혼자 살던 친구 어머니가 소파에 앉은 채 숨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더라고 들려주자 내 어머니는 대뜸 “부러워라, 복받으신 분이네” 했다. 친구는 가족 누구도 임종하지 못하고 혼자 돌아가신 걸 슬퍼하던데 뭐가 부럽다는 거냐고 반박해도 어머니는 단호했다.

“임종이 뭣이 중요하냐. 필요 없다. 자식들 귀찮게 안 한 게 어디여. 가족이 임종하든 안 하든 죽는 사람이 알 게 뭐여. 남는 사람들이나 잠깐 마음 아프고 말겄지.”

어라… 내가 모르는 사이 어머니 생각이 급진적으로 바뀌어버렸나. 임종에 연연하는 마음이 있는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말이 살짝 얼얼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의료화된 죽음의 비참을 숱하게 보고 듣는 경험이 ‘좋은 죽음’에 대한 고령자의 시각도 많이 바꿔놓았나 보다.

‘임종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어머니 말씀을 생각하다가 4년 전 출간된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던 도중 웃음이 터졌던 대목이 떠올랐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l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 동양북스(2022)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l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 동양북스(2022)

흔히들 임종할 때 죽음을 앞둔 사람의 감각 중 청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있으니 계속 귀에 대고 사랑과 감사를 담은 작별 인사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자녀와 손자들이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말을 걸었더니 할아버지가 확실한 발음으로 “시끄럽다”고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왠지 내 아버지도 그럴 것만 같다. 까무룩 흐려지곤 하던 아버지의 의식이 비교적 또렷한 날이면 반가운 마음에 귀에 대고 “아프지 않냐, 춥지 않냐” 물어보는 나한테, 아버지는 종종 “너는 한번 물어보면 됐지 왜 자꾸 같은 말을 하냐”고 역정을 내셨으니까. 그런 역정조차도 그립지만 말이다.

또 고령자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내던 노인이 말기 암으로 죽어갈 때 마지막까지 한시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설의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곁을 지켰더니 죽어가던 사람이 “가끔은 혼자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던 일화도 나온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 책에서 입회인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쪽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이라며 이런 걱정을 ‘임종 입회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입회인 없이 혼자 죽는 것을 고독사라고 부르지 말자면서 ‘재택사’라는 말도 만들었다. 나는 이전 글에서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쓴 일이 있는데, 고독사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우에노 지즈코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 죽느냐의 문제보다 살아생전 고립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노후에 혼자 사는 노인이 가장 행복하다는 점을 여러 논거를 들어 설명하는데, 살아온 환경과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일반화하기 어려운데다 나는 뭐가 됐든 ‘가장 행복한’과 같은 수식을 붙여 급을 나누는 건 탐탁지 않아서 그 대목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부러워했던 대목은 노인이 행복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위급할 때 병원에 실려 가지 않고 집에서 삶을 마감하는 게 가능한 일본의 시스템이었다.

저자는 집에서 지내던 노인의 상태가 위급해져도 당사자든 가족이든 절대 119를 부르지 말라고 권유한다. 그래도 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24시간 대응을 의무로 하는 방문 간호 스테이션이 마을마다 있다.

나는 2년 전 일본 도쿄에서 차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다세대 공생형 커뮤니티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에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방문 간호 스테이션 이야기를 들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커뮤니티 시설과 함께 노인들의 자립 주택, 다세대 공동거주 주택, 요양시설, 호스피스를 한곳에 지은 마을인데, 거주자가 밤에 갑자기 아프거나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묻자 24시간 운영되는 방문 간호 스테이션이 5분 거리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필요하면 간호사가 야간 방문을 하거나 의사에게 연락해준다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도 “방문 간호 스테이션과 연락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혹시 안 된다면 주치의, 그다음은 케어 매니저, 그다음은 방문 간병 센터의 긴급 전화로 연락하면 된다”고 책에서 일러주었다.

이 방문 간호 스테이션과 주치의, 케어 매니저는 모두 한국에 없는 시스템이다. 올해 3월 말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가 전면 시행되지만, 그처럼 의료와 돌봄이 24시간 유기적으로 결합한 체계로 가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얼마 전 ‘죽음 복’을 갈구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았다. 한 노인의 집에서 방문 진료를 온 의사와 간호사, 케어 매니저, 요양보호사가 둘러앉아 노인의 돌봄을 의논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머니가 부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저긴 천국이네. 무슨 복이 얼마나 많으면 저렇게….”

복받지 않아도 늙어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의료와 돌봄이 결합된 서비스를 받으며 생애 말기를 보낼 수 있는 기적이 여기서도 ‘어쩌면’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나면 좋겠다.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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