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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 shared a memory.
갚은 내면의 기도란 뭘까? 남을 위해 한다는 기도도 하늘에 가닿게 절실하게 했었나?얄팍한 인정으로 포장된 기도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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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대한소고 小考.'
고요한 밤 풀벌레 소리에 잠을 설쳤다.
그리고 소리라는 단어에 빠져버렸다.
나를 소리울이라고ㅡ솔이 울창한 동네에 살았던 사람 ㅡ우리 엄마가 하동사람이라 하동댁 인 것처럼 택호를 부르듯 내 이름을 불러주는데 벤조님은 나를 소리를 유장하게.
어쨋거나소리울은 내 필명이다.
여고시절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레이드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를 좋아해서 걸핏하면
시몬! 낙엽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해가며 그 긴 시를 외웠었다.
소리를 말하자면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기럭기럭 기러기 울며 갑니다 따옥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에.
매미소리 시원한 시냇가에서
우리 엄마 빨래소리 톡 탁 톡 탁
우리가 부르던 동요속어 얼마든지 많은 의성어가 나온다.
거기다 어린 아가의 울음소리 엄마의 다듬이 소리.깊은 밤 여인의 재봉틀 돌리는 소리
찾아보면 아름다운 소리가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남자들이란 아무래도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이상한 동물?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하필이면
해군성(解裙聲)' : 치마 벗는 소리
이라고 했다니.
#조선의 걸출한 선비 다섯명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를 가지고 시 한 구절씩을 읊어 어떤 시가ㅡ소리가 ㅡ좋은지 의견을 모았다.
정철 유성용 이항복 심희수 이정구 등 당대틀 좌지우지 하던 걸출한 선비 다섯 명
#정철(松江)
• 淸宵朗月 樓頭遏雲聲 (청소낭월 누두알운성) :
- 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심희수(一松)
•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
- 온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유성룡(西崖)
•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 :
-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이정구(月沙)
•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
-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이항복(白沙)
•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 :
-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그 자리에서 오성대감 이항복의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한다.
당대에 내노라 하는 대학자요 문장가요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들도 남자는 남자였었다.
오죽하면 선비들 간에 낮퇴계 밤퇴계란 말까지 생겼겠는가?
김광균시인의 시 설야에서도 첫눈 오는 소리를 "어느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읊었다.
그리고 이런 남자들의 놀이를
음란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멋인지를 칭송까지 하고 있다.
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있을까?
얼굴 붉어지는 부끄러운 소리가 남자에게는 그리 멋 있었나?
스님을 시험해 보고자 의도적으로 옷을 벗은 기생 황진이라면
모를까.
왜장을 품에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라면 모를 일이다.
공연히 소리가 비약해 버렸다.
좀 부끄럽네
"해군성(解裙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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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성(解裙聲)이란 말(言) 해군성(解 裙 聲)= 女人의 <"치마 벗는 소리">라고 합니다.
解(해) : 풀 裙(군) : 치마 聲(성) : 소리
30년을 벽만 쳐다보고 도(道)를 닦은 스님이 계셨다.
황 진이(黃眞伊)는 자신의 여자 됨의 매력(魅力)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비오는 어느 날, 황진이는 절(寺)집으로 스님을 찾아가 이 깊은 밤 산속에서 갈 데가 없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애원한다. 비에 젖은 여인의 모습은
욕정(慾情)을 일으키게 하는 감정
선정적(煽情的) 이었다. 거기에
남자(男子)에게는
보호(保護) 본능(本能)을 불러 일으키는 가련함이 더해
이런 유혹(誘或)을 떨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너무나 담담하게 그렇게 하라고 승낙 한다. 스님은
이미 도(道)의 경지(境地)에 있었던 터라
여인(女人)과 한방에 있다가 유혹(誘惑)을 해도
파계(破戒)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사(山寺)의 방(房)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다. 돌아 앉아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서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으랴?.
30년 스님의 수도(修道)는
이 ('해군성(解裙聲)' 소리에 한 순간 무너지고 만다. 물론
당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이
불교(佛敎)를 폄하(貶下)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옛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은 해군성(解裙聲)을
'(여인의 치마벗는 소리)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인정(認定)하고 있다. 조선 효종때
홍 만종의 명엽지해(蓂葉志諧)에
소리의 품격을 따지는데, 달빛(月光)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정철(鄭澈), 단풍(丹楓)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심 희수(沈喜壽), 산골 마을 초당(草堂)에서 도련님의 시(詩) 읊는 소리. 이 정구(李廷龜) 새벽 잠결에 들리는 아내의 술(酒) 거르는 소리
유 성룡(柳成龍), 그러나 단연 으뜸은 오성 대감 이 항복(李恒福)의
'깊은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女人)의
<치마 벗는 소리>'였다. 조선일보 신춘문예(新春文藝) 당선작인
김 광균의 시(詩) 설야(雪夜)에서, <'첫눈'>을
'머언 곳에서 여인(女人)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比喩)하고 있다. 깊은 밤에 눈 내리는 소리가
시인(詩人)에게 마치 어둠 속에서 치마끈을 풀어
치맛자락이 사르르 흘러 내릴 때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리처럼 들린 것이다.
조선 시대, 우연히 어느 벼슬 아치의 환송 회식(會食)에 참석한
정 철 과 유 성룡, 이 항복, 심 희수 그리고 이 정구 등
학문(學文) 과 직위(職位)가 쟁쟁한 다섯 대신(大臣)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興)을 돋우다가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詩題)를 가지고
시(詩) 한 구절씩을 읊어 흥(興)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각자 이런 시(詩)를 읊었다. 淸宵朗月 樓頭 遏雲聲
(청소낭월 누두 알운성) - 정 철(松江) - 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 심 희수(一松) -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 - 유 성룡(西崖) - 새벽 창(窓)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 이 정구(月沙) -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 - 이 항복(白沙) -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제일 압권(壓卷)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당대(當代)에 내노라 하는
대 학자(大學者)요, 문장가(文章家)요, 정사(政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정치가(政治家)였지만, 그들이 아무리 유학(儒學)의 괴범(軌範)에 얽매여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本性)에 치열하다 보니 어찌 일개
장삼이사(張三李四)나 무엇이 다르랴?. 음란(淫亂)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情感)과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멋으로 다가오는가?. 이들의 풍류(風流)와 해학(諧謔)과 멋!. 정말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고도 남기에 족(足)하다. 우리는 어찌해야
저들의 그림자라도 쫓아갈 수 있으랴!!!.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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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성 (解裙聲)
벗을 해(解) 치마 군(裙) 소리 성(聲)'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있으랴.
조선시대 우연히 어느 벼슬아치의 환송 회식에 참석한
정철과 유성룡.이항복.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등
학문과 지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를 가지고
시 한 구절 씩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정철이 먼저 운을 뗐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淸宵朗月 樓頭閼雲聲(청소랑월 루두알운성)
맑은 밤 밝은 달 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 소리
●일송 심희수(一松 沈喜壽)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서애 류성룡(西崖 柳成龍)
曉窓睡餘 小槽酒滴聲(효창수여 소조주적성 )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 거르는 소리
●월사 이정귀(月沙 李廷龜)
山間草堂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 )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이날 저녁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대감 李恒福의 '여인이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이들의 풍류와 해학과 멋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하다.
우리는 어찌해서 선조들의 그림자도 못쫓아가는가!
시실 解裙聲(치마벗는 소리)보다 한 수 더한 소리가 있으니 다름아닌 撒尿聲(산요성)이다.
洞房良宵 佳人撒尿聲(동방양소가인산요성)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이 (요강에) 오줌누는 소리
여기 모인 학문과 지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이 감히 입밖에 못냈을 뿐,
尿壺裏 撒尿聲(요호리 산요성)
여인의 요강에 오줌누는 소리보다
색과 멋을 더한 소리가 어디있겠가?
https://won2015.tistory.com/1586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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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시작 두번째이야기
3흙집을 꿈꾸다가26
안식처
집에 오는 손님을 맨입으로 보내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신 아버지의 엄명으로 어머니는 많은 사람의 귀찮은 밥 수발을 하셨습니다. 여름이면 미숫가루, 겨울이면 동지 팥죽이 주메뉴였습니다. 하루 종일 물건을 팔다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고 아프다면 공짜 침을 놓아 주시는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구세주나 되는 듯 보이지만. 어머니와 우리들은 싫은 느낌이 들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는 도대체 조용할 틈이 없다며 늘 불평을 하곤 했는데 어느새 사람 좋아하던 아버지를 내가 닮아 버렸나 봅니다. 누구든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차를 마시며 수다라도 떨어야 허전하지 않습니다. 바쁜 일이 많아도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더 우선인 것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을 사귀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필리핀의 칼리드 신부님도, 속초 혜경이네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분이 회의를 마치고 우리집을 방문했고, 횟집 혜경이네도 속초를 갈때마다 만났습니다.작은 아들은 '엄마는 일을 저지르는데 선수'라고 기막혀 합니다, 그러나 지쳐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사람들이 내게서 안식처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약점을 다 갖고 있으면서 꼿꼿하게 자존심을 지키느라 늘 긴장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만은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돈도 명예도 잘난 구석도 없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이 부족하게 보여 깔보고 싶은 이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입니다. 이럴 때 나를 위로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쓸모없는 인간을 만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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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 shared a memory.
하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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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시작 두번째이야기
3흙집을 꿈꾸다가27
침묵의 메시지
만학에 한국 사상을 공부 한답시고 매월당 김시습에 대해 석사 논문을 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김시습은 다섯 살 때부터 세종대왕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학자였으나 세조가 왕위를 왕위를 찬탈한 후 불가에 몸을 붙여 방랑의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매월당집' '국역매월당집' 등을 기본 교재로 삼아 책 속에서 그가 교류했던 사람, 읽었던 책, 존경하거나 사모하던 이들의 작품을 찾아 읽고 소설 김시습 전을 쓴 소설가 이문구 선생을 만나보기도 하며 내 깐에는 글을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월당을 풍류객이였으며 생육신 중의 한 분, 혹은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쓴 사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곡 선생이 전기를 써 그를 기리며 '백 대의 스승이 될 만한 분'이라 했고, 정조 임금이 이조판서의 벼슬을 추서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큰 분이었는가를 조금 더 알 수 있을 듯 싶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전여행가였으며 시인, 소설가, 철학자, 역사가, 조각가, 문화 평론가, 종교 연구가. 차 애호가, 건축가이기도 했고 술법을 가진 도인이었다고도 합니다
내가 산사를 찾기 시작한 것은 매월당 연구를 시작하고부터였습니다.책상 앞에 앉아 아무 느낌없이 매월당 연구를 하고 싶지는 않아 그 전집을 끌어안고 잠자고 꿈꾸며 사진을 찍는 남편과 함께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명산 사찰들을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천년이 지나야만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 사람이 나오리라 예견했다 하는데 백년 뒤의 율곡이나 육백 년 뒤에 내가 그에 대해 피력하는 것은 천년 뒤, 그를 제대로 알아볼 누군가가 오기 위한 징금다리 역할을 한 것일까요?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산사에서 들려오는 그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억겁 세월 그 이전부터 불어왔을 바람에는 그가 마시던 차 향기가 실려 왔습니다.
그의 벗이던 신숙주가 말하듯 ''열경 어찌 말 한마디를 하지 않소?'' (열경은 매월당 김시습의 자)
논문이 쓰여지지 않을 때면, 저도 그렇게 여쭤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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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시인, 수필가 하태무의 책 읽어주는 여자 115회차
(진주여고 100주년 소식-
하동기행)
Transcript
[음악]
안녕하세요. 신스필과 하태무에 책 읽어 주는 여자 그 115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가까운 진주의
진주 여자고등학교 백주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2025년 4월 25일은 인근진주 여자고등학교의
백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격조 있는 행사를 귀획하여 대선배인
국제적 추상화가 이성자 화백 기념사생대회와
토지작과 대선배 박경희 소설과 기념일장을 열어 제학생들에게 시상을
하기도 했고 백주년 행사 당일은 모교와 서울남산 타워 두 곳에서
기념행사를 를 지루기도 했습니다.
진주에서는
주년을 기념하는 시계탑을 세웠고 전국의 동문들이 모여 잔치를 버리는
한편 10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는 일단 모교에서
30기 정행길림이 하늘에 고하는 충문을 읽고 서울로
출발하여 서울에서는 추상화가 이성자백의
은하수 등 대표적인 그림을 디자인한 한복으로 패션쇼를 열고 남산 타워에서
교과를 부르며 축실을 낭송하는 등 진주 여고의 위상을 서울에서도
더높인 것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9일 KBS TV
다Q온에서는 교실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을 주제로
진주여고 100년에 걸친 세세한 흐름과 특별한 의도로 만들어진 학교의
설립 과정과 교실에서 시작된 독립운동
등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졸업장을 을지 못한 100년만의 졸업장 등을
내용으로 한 진주여고의 특별한 역사를 반영했는데
만 동문들과 가족들 그리고 전국의 모든 관심 있는 분들이 시청을 했고
그것을들은 동문들의 시청 소감 중 대표적인
한편을 지금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선 개교 기념일 당일의 충문부터
읽겠습니다. [음악]
충문 하늘은 맑고 땅은 숨을 고르며
바람마저도 걸음을 멈추는 오늘 온 우주의 마음과 함께 수십년 전에이
학교를 졸업한 우리가 꿈에라도 그립고 가보고 싶어 하던 목교의
교정에 서서 진주여자고등학교 100년을 기리는
충문으로 하늘에 고하려 하옵니다. 1925년
암담한 일제 치하 경의 시대를 건너
뜻는 어르신들의 결단과 헌신으로 나라
이른 서름을 자식들에게는 되물림하지 말자.이 이 악물고 온몸 던져 만드신
더전 그 한전 불씨는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진리를 밝히는 등불로
자라이 땅의 수많은 딸들을 안고 품고
가르쳤다 들었습니다. 서이 버렇던 남존 여비의 시대에
딸들이 바로서야 어미가 바로서야 나라도 찾을 수
있다는 진주 땅 어르신들이 일어섰다 들었습니다.
하늘이시여 이분들의 홀령을 불러모으사
그분들의 민족 자본으로 만든 학교를 졸업한 우리들의 간절한 감사의 절
은혜의 절을 받게 해 주옵소서.
100년 전 그 불씨 위에 핀 꽃은 한세기를 건느며 진실을 배우고 품격을
높이고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가정과
사회와 나라 곳곳에서 그 향지를 나누었습니다.
이름없이 빛나고 말없이 버텼으며
세월 속에 서로 사라지지 않는 전통의
진주 여자고등학교 그 자체였습니다.
기억합니다. 일제를 견뎌냈고 배움터가 화마에 휩쓸려 남의 학교에
얹혀서 공부하면서도 밤을 지세우며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스승님들 딸로 자라 어미로 사는 고단한 삶의
갈피마다 목교를 그리워하며 모교를 가슴에 품어온 댕기머리
소녀들이 오늘의 우리였음 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진난한 인고와 정성들이 한 사람
또 한 사람 한해 또 한해 이어져 오늘 100년의 날을 맞았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목교주년 오늘의 축하은 곧 다짐이요이
순간의 환인은 곧 책임이니 진주 여자 고등학교의
이름 아래 더 지혜롭고 더 단단한 이들이 또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하늘이시여 부디이 땅의 배움이 계절처럼 이어지게
하시고 빛이 되어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언제나 품고 있는 이름으로
진주 여자고등학교가 길이 길이 남게 하소서.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깊은 땅처럼 든든한
품격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로 성장하여 또 다른 백년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그 이름 진주 여자고등학교
빛나는 전통 위에 찬란한 내일을 더하여 영원하소서.
고의 고의 빛나소서. 2025년 4월 25일
진주여자고등학교 설립주년 날에 제30기 졸업생
정행길드림. [음악]
===
그리고 지난 8월 9일 밤 10시 15분 KBS TV 다큐온에서는
교실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을 방령했습니다. 그 시청 소감으로 다큐의 흐름과 진주
여고의 자부심이라는 제목 아래 시청 소감을 보내온 많은
소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감 한편만 골라서 읽겠습니다.
[음악] 단순히 한 학교의 역사나 동문회
자랑을 넘어 한 도시가 품어온 교육과
독립 정신 그로부터 파생된 인권 문화
예술사의 흐름을 치밀하게 짚어낸 작품입니다.
방송은 진주라는 공간을 무대로 교실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이라는
다소 사적인 주제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교육이 어떻게 한 사회의 집단 의식을 형성하고 역사적 변화를 견인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방송은 조선시대 국지인재지
부고라는 별칭에서 출발해 진주가 오랫동안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개방적인 교류는 자연스럽게 학문과 교육을
꼽히었고이 전통은 일제 강정기라는 민족적 시련
속에서 서울으로 큰일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일제의 단압은 오히려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진주 사람들은 교육이 곧 저항이자
항전의 무기로 삼아 교육은 곧 독립운동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양반의 땅으로 알려진 진주에서 1923년 시작된 형평 운동은 백정과
전민 등 계급과 신문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현실에
맞서 일어난 한국 최초의 조직적 인권 운동으로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이는 이는 진주가 저항의 땅이자 인권
운동의 발상지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일신여학교로 시작하여 100년의
역사를 가진 경남 최초의 여자고등학교로 설립된 진주 여원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 교육 기회를 확산하였고 그 과정에서 항일
운동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여학생들이 거리에서 조국 독립을
외치던 장면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과
이을라의 사례가 단적인 예입니다. 진주여고의 민족 의식과 인권 운동이
우리나라 천국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으니 진주 여고의 위상이 크게 고향된
것입니다. 또한 진주 여고가 길러낸 인물들이 세계적 문학 예술가로 성장한
사례를 통해 교육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보여줍니다.
한국문학의 거장 박경리, 여자 피카로 불린 이성자 화백이 모두 진주여고
출신이라는 사실은이 학교가 단지 지역 교육 기관이 아니라 세계적 인재를
배출한 문화적 토양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약효는 진주의 교육열이 단순한 지역적
특성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는 힘이었음을 강조하면서 진주여고가 그
중심에 있음을 전국에 널리 홍보한 것입니다.
진주여고의 자부심은 한 학교의 연대기를 넘어 교육과
저항 그리고 인권의 역사를 잊는 의미 있는 기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주 여고의 자부심을 TV 방송에 방영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원로 선배님들과 전 동문의 뜨거운 응원 덕분이었음은
자랑거리이자 진주 여고의 자부심입니다. 진주여고 파이팅 그리고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음악]
===
===
[음악] 오늘은 하동 구경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가까운 이웃에 사는 하동.
그곳은 정말 아름다운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남해도
여러 가지 미션으로 남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 하동에서는 하동에 반하는 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미션으로 내놓아 미션원
시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비용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 프로그램에 동참하여
하동의 여러 곳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우선 화계 장로 가겠습니다.
이 이
프로젝트를 기한 직원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화동을 알리는 방법은 없지 싶습니다.
화계장트 입구에 김동리 소설 영마를 이미지한 구역에서부터
장터는 시작됩니다. 작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이곳에
왔었습니다. 일시문학인들은 여기서 쑥 인절미를 먹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은 그 화계장터의 고향 맛집에서 언어회를 먹으며 미션을 수행합니다.
1948년 김동리가 소설 영마를 쓸 당시의 낭만 어린 화계장트는 현대화 바람에 이해 사라지고
현재 그 자리에는 상설 상점 하동 특산물 식당들 온갖 것을 팔고 호객하는
상점들이 즐합니다. 1997년부터 현대식 화계장트가
옛날 전통시장의 기능을 대신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고향식당에서 은어회를 주문했습니다. 은어는 바다
방어목 바다 방어가의 민물고기입니다. 맑은 물을 좋아하며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온다 합니다. 살에서 수박향이 나며
생선해를 주로 먹습니다. 자연상 통은 한 마리를 통째로 씹어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미션 수행원은 은어 한 마리와 정식을 시켜 비빔밥과
같이 거든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김동리의 영마비 앞으로 갔습니다.
화계 장터는 단순한 장터가 아닙니다. 이곳은 지리상과 섬진강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다양한 삶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김동리는이 장를 통해 고정되지 않는 삶,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 존재의
상징을 드러냅니다. 특히 장트는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들 즉 영마살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화계장트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이는 장소인만큼
소통과 단절,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이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잠시 멈추지만 결국 다시 떠나야만 하는 것. 김동리는이 화계
장을 통해 삶의 유한성과 떠남의 필연성을 암시하며 독자에게도 인생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오늘의이 미션을 수행하는 여행꾼도 이런
맥락에서 하동을 돌며 소설 역마 이미지 앞에서 각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7불사로 갑니다. 1삼 반야봉 재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잡은 칠불사는 삼국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로 불리 고 있습니다. 칠불사 가는 길에
언제나 쉬고 가든 관향정은 뚫리지 않았습니다. 솜씨 좋은 관향이 만든
차는 이제 저 세상 것이 되어 버리고 향기를 풍기던 그녀도 저 세상으로가
버렸습니다. 그 슬픈 사연의 관향정 이제는 낯선 분이 그곳에서 차를 팔고
있을까요? 환자를 돌보느라 엄마의 위급함을 모르고 엄마를 죽게 한
충격받은 그녀의 아들은 이제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 의사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차아 그곳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어 앞만 보고
칠불사를 향했습니다.
[음악] 아야불교의 중심 사찰로 성장한
칠불사는 1100여년 전 신라 효공왕 때 한번 불을 떼면
온기가 백일은 간다는 아짜방을 처음 지으로서 더욱 유명해졌었지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78년 재월 통광대선사가
다시 지었습니다. 세계 건축 백화 사전에도 들어 있다는이 아짜방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일주문 앞 넓은 터에 초이사 다시
다신 탑비가서 있어서 차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다성으로 불리는 초위선의 비석에는 어떤 설명도 표지판도 없어서
지나칠 뻔했습니다. 모르고 칠불사를 찾아갔다면 그냥 부도 하나서 입꾼 할
뻔 했습니다.이 칠불사는 초위선사가 다신정과 동다송을 지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다신정과 동다송은 우리나라 차문화의
중요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저서입니다. 더구나 다성으로 추항받는
조이선사의 작품이니 다이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중 동다송은
우리나라 토산차의 미덕을 칭송하고 찬양한 시입니다. 그곳에서 구름미의
잣집이 있었습니다. 날씨는 무지무지 떠웠습니다. 너무 덥기도 하고 조금
쉬어 가자고 자집에서 얼음 동동 뜬 시원한 생강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그 생강차 한 잔 8,000원의 여유가 바로 극락이었습니다.
[음악]
하동송님으로 갔습니다. 하동송님은 경남하군 하동읍의 남서쪽 섬진강변을 따라 길리
조성되어 있는 마을 숲입니다. 실불사에서 송림으로 가는 섬진강 7리
주변은 우리나라 최고의 휴양지라 해도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강가에 조성한
공원들이 강을 따라 계속 이어집니다. 이곳은 조선 왕조 1745년에
당시 도호부사 전상이 광량만의 해품과 섬진강의 모래바람을 막을 요령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수피라 합니다. 지금은 재방이 따로 있어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조선 당시에는 강변의 퇴적된 모래 언덕이 재방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래 언덕에서 생기는 모래 바람이 마을에
피해를 주자 그 위에 소나무를 심어 땅을 단단히 하고 아울러 모래바람도
줄이고자 조성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심은 소나무 600주와 그 후에 심은
후계림 300주가 더해져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규모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노송 숲입니다. 섬진강의 백사장과 조화를 이루어 푸른
에너지를 방문자에게 제공합니다. 그리고 동정호와 악양을 보러 가는
길에 배롱나무 가로수를 봅니다. 무덤에만 심던이
배록나무을 가롯으로 심는 곳이 많아졌습니다.이 시기가 되면 배롱나무 꽃을 보기 위해
안달이 났습니다. 이번에 자연스럽게 하동 여행을 하며 계속 길에서이 꽃을
보게 되어 행복합니다. 중국에도 들어이 나무를 가롯으로 심는 곳이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나무 이름을 묻는 사람에게 웃음 나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지를 간질간질 살며이 긁기만 하는데 가지 끝이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현상을 나무가 간지름을 타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땅 맞는 시기에 목배기홍 배롱나무꽃을 계속 보며
미션을 수행합니다. 멀리 지리산이 푸르게 뻗어 있습니다.
[음악] 악양 원래 중국 호남성에 있는
중국대의 호수이고 악양루도 그 호수에 지어진 누각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경기도만한 크기에 주의가 500이라 바다와 같습니다. 호수가의 악양루가
있고 소상팔경이 부근에 있습니다. 두보가쓴 명문장 등악는 인구의
회자되는 유명한 시편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 똑같은 동정 똑같은
악양루가 화동에 있습니다. 슬렁다리도 있고 거기에 설렁설렁 걷기 좋은
산청료도 있고 광량 배군산도 보이고 나루배도 있고 계단도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더운 날이라 솟구이는 분수가 시원함을 더해
줍니다. 동정호 주변에서 벼가 익어가는 벌판을 보았습니다.
최찬반에서 내려다 보면 보이던 풍강을 걸어다니며 느꼈습니다. 동와서 살고
싶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한적한지 대선배 박경이님은 그 어떤 예지로
이곳을 무대로 그 유장하기만 한 솥을 토지를 쓰려고 했을까요? 하동의
동정호는 오랜 세월 강물이 드나들며 생긴 자연 습지로 청등오리, 붕어 등
야생조수, 물고기 식물이 공존하는 자연 상태, 계상 보존 가치가 있는
호수라 합니다. 호수가에는 약 1km의
호수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악양루에 올랐습니다. 노인
일자리 일을 수행하는 할머니 둘이 악양 누마루 바닥에 앉아 수다를
뜹니다. 아, 여기 너무 아름답네요. 내가 말하자 네. 여기로 오세요.
후순이 넘어도 설렁설렁 일하며 돈도 번답니다. 너무 행복해요. 본인들이
행복하다면 정말 행복한 겁니다. 나도 두보를 흉내내며 등악를 읊어 봅니다.
[음악] 등악양 하태모
푸른 하늘의 뭉기구름 둥둥 떴다. 변은 이거 한창이고
안악내들 한가롭다. 어쩌다 동정호로 왔네. 행복이란 이런
것 술렁이던 본뇌들이 윤설 속에 묻히면서
높이 높이 솟구이는 물길 따라 하늘 보내 오늘은 악양루에 올라 평화로움
얻으리. 여름 가면 가을 오지, 슬픔 가면
기쁨 오지. 세상을 돌고 돌며 아픔도
지나가지. 온 세상 다 잃는데도 동정호를
보았네.
최찬판으로 갑니다. 수많은 역 영화 영화가 여기서
촬영되고 그 유장한 토지의 이야기가 여기서 펼쳐집니다. 토지 박물관
박경리 작가의 짧은 단상들이 금은 석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분은
정말이 나라의 지성인 중 지성인 생명 존중의 화신입니다. 원래는 실을
썼었는데 김리 선생에 의해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만인이 존경하는 토지
작가의 주인공이 됩니다. 원주 당구동에 사시던 그분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넓은 대척에 쌓여 있던 중국 연변에서 온 빗발른 신문
뭉치들이 기억났습니다. 더 낡은 신문들을 왜 모아두었느냐고 묻는 내게
토지를 쓸 때 잠고 자료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토지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인무을 쭉 머리에 떠올리며 깊은 존경심으로
박경리 선배의 구역을 떠나 옵니다. 입니다.
[음악]
[음악]
꽃 피는 저 교정에서
푸른 꿈을 안고 자았네.
소나무처럼 고든 마음으로
나나리 새롭게 살아리.
세상을 품어라. 신주의 빛로
100년의 역사 그 빛을 지켜라.
오늘도 우리는 함께 나가란
미래를 향해서
[음악]
세월이 변치 않는
우정과 사랑이 흐르네.
돈문의 정으로 하나돼.
다시 또 백년을 걸어가리.
세상을 품어라. 신주의 빛으로
100년의 역사 그 빛을 지켜라.
오늘도 우리는 함께 나아가리
살란한 미래를 향해서
[음악]
[박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부정과 사랑이
흐르라. [음악] 동물의 성으로
[음악] 하나돼요.
사실도 백년을 걸어가리.
살란한 미래를 향해서
[음악] [박수] 세월이 흘러도
편지 않네. [음악]
[교양] 시인, 수필가 하태무의 책 읽어주는 여자 115회차(진주여고 100주년 소식-하동기행)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
261 views Aug 26, 2025 #FM91 #경상남도 #라디오
"우리가 만드는 우리 남해의 방송!"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은 우리 남해인들의 이야기를 담는 우리 남해의 방송입니다.
FM 91.9MHz 사단법인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 NBS(SouthSea Brodcasting System)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은 비영리 공익 지상파 방송사로 경남 남해군(읍)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은 남해군민이 소유하고 남해군민이 운영하며, 남해군민이 진행하는 공동체라디오방송으로 비영리 공익 지상파 라디오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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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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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칠불사 가는 길에 언제나 쉬고 가던 관향정은 들리지 않았다.
솜씨좋은 그녀가 만든 차는 이제 저세상 것이 되어버리고 향기를 풍기던 그녀도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슬픈 사연의 관향정!
이제는 낯선 분이 그곳에서 차를 팔고 있을까? 환자를 돌보느라 엄마의 위급함을 모르고 엄마를 죽게한 충격받은 그녀의 아들은 이제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 의사생활을 계속하고 있을까? 차마 그곳으로 눈을 돌릴 수도 없어 앞만 보고 칠불사로 향
했다.
#지리산 반야봉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 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가야 불교의 중심 사찰로 성장한 칠불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은 간다는 아자방(亞字房)을 지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졌으나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78년 제월당 통광 대선사가 다시 지었다.
세계 건축백과사전에도 들어 있다는 이 아자방은 보여주지 않았다.
#일주문 앞 넓은 터에 초의선사 다신탑비가 서 있어 차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의 비석에는 어떤 설명도 표지판도 없어서 지나칠 번 했다. 모르고 칠불사를 왔다면 그냥 부도 하나 서 있군 할 번 했다.
#이 칠불사는 초의선사가 《다신전》과 《동다송》을 지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신전》과 《동다송》은 우리나라 차 문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저서다. 더구나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의 작품이니 다도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동다송》은 우리나라 토산차의 미덕을 칭송하고 찬양한 시다.
#그곳에 구름위의 찻집이 있었다.날씨는 무지무지 덥다.
너무 덥기도 하고 조금 쉬어가자고
찻집에서 시원한 생강차 한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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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장군과 진주국립박물관과 배롱나무
진주성을 찾있을 때 김시민 장군의 동상앞을 지났다.
로마에 오래 살았던 친구의 두 딸들은 당연히 김시민 장군을 모를 터였다.
진주 사람의 명예를 걸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임진왜란 때 3대첩의 하나인 진주 대첩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 낸 조선의 장군이다.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2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투 후 숨어 있던 적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39세.
그의 사후 충무공 이란 시호를 받았다.
사람들은 김시민장군을 잘 모른다.
충무공시호도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인 줄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총11명이 충무공 시호를 받은 사람들이 있는 줄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두 딸들은 촉석루 의암,의기사의 논개 이야기를 다 듣고 보고 국립박물관도 보고 싶어했다.
혹시나 도손트로 봉사했던 후배가 있을래나 전화를 했더니 불통.
코로나로 요즘 안내원은 없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와 영상물이 있었다
영상자료는짧지만 전쟁의 개략은 알기쉽게 정리되었다.
일목요연하게 전시된 여러자료들을 보면서 친구와 두 딸들은 놀라워하거나 신기해했다.
그들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시 한국과 일본, 명나라의 인구 수였다고 했다.
그리고 암청나게 큰 칼들이었다고 했다.
숫자로 본 임진왜란에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사람의 코만 베어간게 아니고 명나라 사람의 코도 베어 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 여행 때 코무덤을 보며 분개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박물관을 다 둘러 보는 건 힘이 좀 딸렸다.
가다가다 벤치에 많이 앉았었고
중요한 건 사진을 찍어 두었다..
배롱나무 꽃이 피는 시기였다.
배롱나무로 말하자면 안동의 병산 서원이 유명하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서원의 배롱나무는 병산서원 건물이 아니더라도 나무만으로도 충분히 매로하는 멋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진주성에 배롱나무꽃이 피고있다.
옛날에 무덤가에만 피던 꽂
친구는 배롱나무에 꽂혀 배롱나무만 찍는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하얗고 꽃은 빨갛다.
한 폭의 그림이다.
진주성으로 가거든 박물관은 꼭 보시라.
그 정원의 배롱나무와 하늘을 반드시 보고 오시라.
진주 선비의 넋이 어린 그곳에서
문인화에 나비, 벌레들이 오가는 동영상을 찍고 또 찍었다.
==
Transcript
[음악]
안녕하세요. 시스필과 하태무의 책
읽어 주는 여자. 그 114번째
시간이 왔습니다.
비는 계속 국지성
소나귀로 내렸다가 그쳤다가
더는 계속 기승을 부립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도 더위의 끝에 있는
느낌입니다.
변은 물어익어 가지만 우리는이 가을을
준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황선유님의
숲을 읽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남의 FM 91.9MHz
9M라디오와
남의 FM 스마트 전용 앱 그리고
남의 FM 유튜브와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소리율의 올리원 펜션을 통해서
들려 드립니다. 남의 방송국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30분간
진행됩니다. 제 방송은 매주 일요일
저녁 9시와 화요일 오후 5시 일주일
새 차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음악]
가동에서 나고 부산에서 숲을 쓰는
2008년
모교의 박경희 소설과 노재가 계기가
되어 수필과 비평에 등단한
황선유 수필가는 전입을 다듬다.
은한 것들의 습작 매별 수비토의 언어
등 네근의 수피를 내었는데 이번에
수필 선집 우리의 매력 중 하나는
나이를 발관했습니다.
황익순 문학상, 부산 수필과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현재 개관 수필문학
편집장, 수필과 비평 작가회, 부산
지부장 등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황선유 수필가는
진주 여고를 졸업한 일신문학
회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낸
수필집은
네부에 이르른 36편의 수필을
선별하여 발간했는데 오늘 제가 읽을
이야기는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남의 이야기가 좀 들어 있는
수필입니다.
[음악]
불미해안에서 보낸 편지
황선유
햇살 눈부신 5월 한 날에 남의
물건니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심리
물미향 길을 달린다.
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길이라
하나 5월 한 날에도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자신을
50대라 밝힌 문화해설사가
투박한 남의 억양으로 신음성으로
시물미 해안에서 보낸 편지를 낭송하는
동안 나는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돌미 날리는 모습을 그리고
그 신을 그렸다. 맨 처음 그는
남해촌의 작은 학교 학생이었다.
내 그름이지는 시간이면 낮은 바도에서
멀미하는 노를 보며 마침내 신이 되는
꿈을 꾸는 소년이었다.
먼 바다에서 갯바람이 불어오는 날에는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를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곤 했을 것이다.
그러하던 어느 해에 땅간 빛으로
물들은 노 같은 선생님이 남해로
왔다. 그는 온몸을 방풍님처럼
불히다가 그만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라고 말해 버렸을 것이다. 지금
나는 당간 빛으로 물들은 노 같은
선생님 내 친구를 그린다. 아무리
시간을 얹어 포개도 쌓아 눌러도
절대로 훼손되지 않는 기억이 있다.
그해 여름은 몹씨도 날이 더웠다.
대학 입시가 몇 달 후였고 엄마
엄마가 나를 몰라 봤다. 도무지 어찌
할 바를 몰랐던 나는 그만 온 등작과
옆구리의 대상 포진을 앓고 말았다.
안부의 시작은 당혹스러웠다.
몇 군데의 병원을 거쳐서 물어물어
찾아간 장터의 흐름한 약방에서 생한
그 병명을 들었다. 약방주인은 환불을
보자 대번에 허 쫙 퍼져 있네.
한마디를 했고 약방을 나올 때까지
짠한 눈길를 거두지 않았다. 낯선
엄마와 등작의 숲은 노도와도 같이
거대한 통증이었다.
그 통증에 머리체라도 휘어잡힌 듯
아무 일도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결석 한 채
하숙집에만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친구가 하숲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봄나물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왔다. 손에는 집에서 만든
음식 몇 가지가 들려 있었다. 소풍
가는 날에는 소풍대신 종일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대학 예비고사날이었다.
시험을 졌던 인근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여기에서 내렸을 때는 초개월
저녁 거리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막내 딸은 서울로 유학을 보낸다고
했는데 학업의 공백으로 인한 대학
입시의 두려움이 짙은 어둠의 한복을
거들었다. 친구의 언니가 마중을
나왔다. 언니는 나와 친구를 양옆에
한쪽 발로 안드이 하고는 식당에
들어갔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의 친구는 옆자리에
언니에게 제잘제잘
하고 친구를 바라보는 언니의 눈빛은
다증했다. 그때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횡하니 집으로 와
버렸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나를
모른다. 도무지 모른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훗날 막내 올케가 된 친구의 언니가
신우이인 나를 영마득자나
하게 된 시작이 그래도 대학생이 된
나에게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 쓴
편지에 돈을 넣어 보내며 손목시계를
사라고 했다.
지인을 꿈꾸던 소년은 커서 시인이
되었고 땅간 빛으로 물들은 노 같은
선생님과 결혼했다.
막내 오빠는 오랫동안 시인과 친구를
염려했지만
시인은 시을 쓰고 시인의 아내는
병창동에 집을 지었다고도
멋진 드레스를 입고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고도 했다. 그 무렵의 나는
사는 일이 슬슬했다.
한날에 아이를 얻고 막내 오빠를 보러
갔다. 시골집 아래 군불된 방바닥에
엎드려 텃밭의 병아리들이 흙파는 것을
보면서 쉬쓰는 법을 가르쳐 주던
오빠는 그날 무협지를 읽다 말고
전시에 준비한다는 언니를 마중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곳에서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작게
울었다. 열린 창으로 한 줄기
짭조로만 바닷바람이 선선하다.
잠시 신의 친구 그리기를 멈춘다.
여태까지도 문화해설사는 실을 낭송하고
있다. 스스로 남해 사랑이 남다르다고
말하는 그녀는 당연히 시인에 대하여도
꼭짓나다. 암송하는 시가 상당수이다.
문득 안부가 끊긴 친구가 궁금하다.
지금은 유럽의 어느 고성역에서
여전히 저녁 노울처럼 물 들어가고
있을지 다시 언젠가 봄나물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줄 것인지
버스가 물미 해안을 벗어나고 있다.
[음악]
이상입니다. 우리는 늘 언어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겨워하지요.
재미있게 잘 들으셨나요? 들어보면
알만한 사람들의 사연이 들어 있지요.
오늘은 계속해서 금강산 기행 중
마지막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겠습니다.
[음악]
다시 동해항으로
1월 21일 7시 40분
배에서 6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침을 꾸려서 풍화코에서
내렸습니다. 타고 왔던 대형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분 신부님은
바쁘신 관계로 비행기를 타고 가시고
우리는 합구정으로 왔습니다. 12시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새로운 만남이 또
시작되는 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목욕탕에 들렸다 집에 와 보니 온통
천지가 눈으로 덮혀 있었고 대한
추위로 온수통이 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마다 불을 밝히고 이웃집의
깜빡이는 불빛도 보았습니다. 온정이의
어둠을 생각하면 불을 밝히고 사는
축복을 한껏 즐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운전해 주었던 엄동식 기사님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은 중국 연변의
용정리 사람이라 했습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를 오가기를 1년여 했지만
온정리 마을의 주민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중국의 가족을 둔 채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 하나로 이곳의
관광버스 운전대를 매일 잡습니다. 단
하루의 외출이나 휴가도 없는 채
그렇게 일한 그분의 보수는 월
300달러 그것도 1년에 1천 달러는
중국의 소개 회사에 받쳐야 한답니다.
1년의 재계약이 이루어졌는데 그때도
또 천 달러를 받쳐야 한다고 하니
그의 실제 수입은 월 200달러
남자인 샘입니다. 그분들은 장전항의
현대상선에서
콘테이너 박스를 개조하여 만든
숙소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라고 주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을 리 없다는 현실이
사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분도 중국인인셈이니
같은 공산 국가의 사람인 셈인데
현대에서 고용했으므로 북에서는 남쪽
사람 취급하고 남에서는 북쪽 편이라
하고 경계하는 것이 뭔내 섭섭하다고
합니다. 도시락 대우는 방법이 섰던
손님들의 시중을 일일히 들어 주는
그분은 매우 자상한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빨리 돈 많이 벌어 가족과 함께
살기를 빌어주었습니다.
[음악]
유기몽조장
민첩하고 예쁜 아가씨였습니다.
처음에는 좀 힘들 것 같아서인지 여자
조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5월부터이 일을 시작했다는데
유래나 전설 등을 제법 유창하게
구사해 냈습니다.
1번부터 8번까지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우리 신부님들이 자주 농담을 해
주셨습니다. 순진하기만 한 그녀는
농담을 능수능란하게 받아 넘기지
못해서 자주 얼굴이 붉그락 부르락
했습니다. 산을 오르며 매일 이렇게
강행군을 하면 힘들겠다고 말했더니
무릎의 연골이 너무 달아 다리 아파
하는 동료들이 들어 있다고 여자가
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지급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자는데 석달
만에 점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음악]
환경보호 여원과 안내원 카키색
윗돌이를 입고 2인 일조로 짝을
지어서 있는 북쪽의 환경요인 오요원과
우리측의 소장 역할을 하는 안내원들은
매우 익숙하고 다정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산에서 만나서인지 서로
악수도 나누고 농담도 주고받고
깨어앉기도 했습니다. 흐르는
이야기로는 북쪽 아무게와 남쪽
아무게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숙덕되기도 한답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뜨거운 피가 흐르는
그들은 너무나 젊고 벌긋게 다른
가슴을 안고 넘치는 정렬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만나
정이드는이 인지상정의 현상이 그들에게
죄가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음악]
5조 사람들
명이 한조인 우리 조원들은 매우
특수했습니다.
조장이 계속 우리 조원님들은 워낙
문화인만 계셔서라고 해서
둘러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제도 어렵고 산도 느리게
올랐습니다. 복장부터 표관하는 스님,
수녀님들
대명 관광버스를 함께 탔던 목사님들
부부 몇 팀 부모님을 모시고 오신
젊은 스님 그리고 땅끝 마을에서
부모님과 누나의 시부모님 등 네분을
모시고 온 자그마한 청년 대학교 학생
처장들 모임에서 온 부부들과 우리들
여덟 명이 합하여 30명이
이었습니다.
젊은 청년의 어머니는 영화 20도의
추위에도 아들에게 장갑을 준 채
당신은 장갑지 거북하다고 한고
맨손으로 구령 복포를 오르더니 내가
여분의 면장갑을 주니 얼른바
끼셨습니다. 모성애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음악]
건강사는 북한 강원 금강군 고성군
통청군과 대한민국 강원 고성군 거진업
현내면 수동면 향로봉 1대 포함시에
인재군 포함으로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과 더불어
한민족을 대표하는 명산이며
석코 세계의 복합유산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백두산과
함께 금강산을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관광 명소 중의
하나로 매우 높게 평가를 합니다.
삼국 시대,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개화이 현재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문학 예술의 배경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동해안과도 접해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 분단 이전에는
동해 안으로 놀러간다면 의뢰의
경원선을 타고 원산 금강산으로
간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한반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현재 생물건 모호 지역이기도 합니다.
때는 영어로 의역하여
다이아몬드 마운틴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주요 지역은 북한영이
되면서 찾아가기가 매우 힘들어졌고
남안에 있던 금강산으로도
간주되던 지역은 상당수가 분단 때문에
금강상과 별개로 인식되었습니다.
햇볕 정책의 일환으로 1998년
말에서부터 2008년 남한 사람들도
방문하여 일부 지역을 관광할 수
있어서 우리도 그때 갔었지만
2008년 금강상 관광객 비살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중단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방문증명서를
받으면 누구든지 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높은 비용과 신변
안전이 문제이고 추후 미국 무비자
입국을 위한 ESTA 발급치 자격도
연구적으로 박탈됩니다. 금강사는 현재
국내법상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에 따라 통일부 장관의 방문
정명서 없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으로
북한과 한국 정부가 서로 방문을
허가한다는 현시점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에서나
방문이 가능합니다. 합니다.
[음악]
2,년에 북한은 유네석코 세계 유산
정적 목록의 복합 유산으로 금강산을
올렸다. 한편 2018년 강원
연구원에 이하 건강산설학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제 방안이 제한되었고
2022년 문화재청에서
첫 전문가 자문 회의를 가졌지만 딱히
공동 등제에는 진전이 없었다.
25년 5월 27일 유네스코는 세계
유산위원회 자문 기구인 국제
기념물유적 회비의 세계 자연보전
연맹이 북한이 신청한 건강산에 대해
등재권고 판단을 내렸다. 등재 권고이
이변이 없는 한 등제가 된다.
유네스코 공개 자료를 보면 북한은
2021년 신청했으나 당시 코로나1
방역으로 심사를 못 했고 2025년
대상에 포함되었다. 다만 두 자문
기구는 해금강 지역의 해물상 종석정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등제할
것을 제안했다. 짜은 기구는 금강산이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온 명성지여서
수많은 문화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 갱관이 뿌리깊게 내려
있다고 팽했습니다.
25년 7월 13일 유네스코
세계산위원회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 측의 신청한 금강산을
세계 유산으로 확정했습니다.
정식명칭은
금강산인데
외금강 및 내금강 구역과 해금강의
3일폭 구역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입니다.
최근 7월 13일에
2025년에 등재된 금강산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음악]
금강산에 새겨진 글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과거 신라치연의 천장역 만곡진주 글씨 붙어서 시작해서
고려 조선시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의
바위를 파서 자기들의 문장을
써넣었다는 것입니다. 금강산은
전국에서 흔한 야산이 아니라 최소 신라 때부터
1천년 이상 성지순례 대상이 가까울
정도로 모두가 가보고 싶어 하던 장소였습니다.
실제로 금강산에는 수백년간
한문으로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옛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글씨가 많다는 점은
중국의 상징적인 제1명산
대상과 비슷합니다.
문구의 퀄리티는 제각이라 예술적인 글씨를 남긴 사람도
많고 일계 낙스에 불과하거나 오래된 과거의 흔적이라지만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도 제법 많습니다.
김일성의 흉물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실제로 옛날 조선 이전의
빛발른 한문글씨와 북한 정권의 붉은 한글 궁서체 글씨가
같은 바 바 바바이에 나란히 새겨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꼴볼겐이었습니다.
금강사는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에게
수많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산지 중에서도 특히 웅장하여 기암
괴석이 많았을뿐 아니라 식생도
풍부해서 예로부터 볼거리도 매우
많았습니다. 더불어, 고구, 신라,
고려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번갈아가며 받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거리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통시적 공시적으로 금강산에
관련된 수많은 예술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금강사는 그
자체로서 우리 한민족 문화사에서
하나의 모티브로서 존재해 왔으며
이러한 금강산의 특성은 중국의
타이산, 호주의 울루 등의 예와 같이
앞서 언급했듯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합쳐진 형태로서
한반도 최초의 복합 유산으로 등제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최근 2025년 7월에
말입니다.
[음악]
저희의 막바지에서 들려드리는 노래는
정태준의 떠나가는 배입니다. 잘 들어
주세요.
[음악]
[음악]
저기 떠나가는데
[음악]
거친 바다
외로이
[음악]
겨울비에
젖은 도체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음
[음악]
은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로운
[음악]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역
가는 배역
그곳이어도
없네요.
장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도
[음악]
맡겨
물결으로
[음악]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은배 Eh
[음악]
다는
아픈 따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열
가는 배열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임없이
꿈없이
홀로 떠나가는데
바람소리
바둑소리
어둠해져서
밀려올뿐
[음악]
바람소리
파도
소리
어둠에져서
밀려올뿐
[음악]
[Culture] Poet and essayist Ha Tae-mu's "The Woman Who Reads Books" Episode 114 (Episode 5 of 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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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views Aug 15, 2025 #FM91 #Radio #Gyeongs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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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hae FM Community Radio is a broadcasting station for Namhae, telling the stories of the people of Namhae.
==
Transcript
[음악]
안녕하세요.
신 수필과 하태무에 책 읽어 주는
여자 그 112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뜨겁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얼음이나 갔다가 수박과 함께
화체를 해 먹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늘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나더라도 시원한 여러 가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음악]
제 이야기는 남의 FM 91.9
9MHz 라디오와 남의 FM 스마트
전용 앱 그리고 남의 FM 유튜브와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소류의 올리원
펜션을 통해서 들려 드립니다. 남의
방송국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30분간
진행됩니다. 제 방송은 매주 일요일
저녁 9시와 화요일 오후 5시 일주일
셋 차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음악]
오늘은 일신문학 회원님
시조집 루트 안의 이층집 중에서
한편을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진혜정은
진주에서 태어났고 진주여고 진주
교육대학 인재대학 교육대학원 국거
교육학가를 졸업했습니다.
1993년
경남신문 신축문회로 등단하여
시조집으로 동기 호태가 머무는 여관
루트 안의 이층집 등이 있습니다.
진주시조 일신문학회 가야 여성문학회
김해문협 경남문협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5인태 문학 경론가는
말합니다. 시조는 절제의 미학이다.
그렇다고 절제의 강박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박격의 자유와 시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오히려
절제함으로써
여백을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진혜정의 신은 조신하고 정죄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문학 박사이며 평론가인
김복근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혜정의 시조는 날끝 그대로의 싱싱한
삶의 서사를 통해 중요한 가치의
메시지를 시사한다. 시조에 나타난
그의 삶에 대한 서사는 자신에게
찾아온 어떤 상황을 자신의 체험과
진솔한 삶의 의미를 알레고리로
드러낸다. 서사가 있는 시조는 청자의
눈길를 끌게 하고이를 통해 화자는
자신의 경험을 숙성하여 발효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안쪽에 있던 자리를 내주고 하늘날이
꽃 같은 당신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커피가 터져 꽃물
뚝뚝 흘리며 냉정한 상대를 보면서
자신의 열정을 태운다. 솔바람 같은
그대는 관역처럼 멀리 있지만 자신이
체감한 그리움과 자연스럽게 융합하여
자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하는
묘한 마력을 보여준다.
도서 출판 상상인에서 출판한이
책 루트안의 2층집에는
총 4부로 58편의
시조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
100페이지에 있는 표재시 루트 안의
2층집을 읽겠습니다.
[음악]
루트 안의 이층집
진혜정
건축계론 다시 보기
영화를 보는 내내 근의 공식이
궁금했다.
슬픔에도 증명이 필요한
것인지
친구는 우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음악]
어떻게 식을 세워야 풀이가 가능할까?
사랑일 때 사랑을을 모른 이별일 때
이별을 모른살
처없는 내가 방정식을 풀고 있다.
철록 대문 정한옥
짝퉁 건축 모형
어떤 계수를 대입해도
해답이 멀리 있다.
똑똑
루트안의 이층집
물음에 물든다.
[음악]
다시 금강산으로 갑니다.
환경여온 배수현은 계속 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기 집은 딸만 두리고 우리
집은 아들만 두리라는 이야기로 아들만
두리니 재미가 없다고 내가
말했습니다.
며느님을 딸로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그래요. 그러나 그 일은 노력이
필요한 거지.
늘 바쁘게 살고 있는 나가사는 큰
아들 부부를 잠깐 떠올렸습니다.
배수여는 효성이 지극한 딸인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냐고 물으니 22살 난 자기가 큰
딸이므로 신살 남짓되셨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며 지름길을 마아하고
꼬부라진 자동차 길을 따라 버스가
있는 곳까지 함께 걸어내려왔습니다.
같은 조원인 남자 친구는 나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멀찍이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내려오니 목이 몹이도
말랐습니다. 단 둘만 있으니 밀감
하늘쯤 나누어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등에서 배낭을 벗어 내렸습니다.
밀감 하나를 꺼내어 배수연에게 갖고
있으라고 주고 다시 배낭 지프를
올리기고 어깨에 매고 보니 어느새
배수연의 손에 밀감이 안 보였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밀감을 호주머니 안에 얼른 넣어버린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도저히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른 척 그냥 그렇습니다. 그녀는
대학 이야기를 하면서 한 총년의 방북
사건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나는
연변대학 학장 전판년 교수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학 이야기를
비했습니다. 연변동포들을 중국으로
시집간 딸로 비유하더군. 그 학장님은
중국 동포들은 친정 부모들이 서로
싸우고 이혼을 하여 남과 북에서
어르릉되고 있으므로 시집간 자신들이
위상이 말이 아니라고 친정이 잘
살아야 시집간 딸이 김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렇게 말하셨어. 그분은
배수연은 눈물을 걸이며 그 말을
듣더니 매우 감격하며 내게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느냐고 하며 어느 나라
지도자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멀리 버스가 보였고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내와 있는 것이
보이는 장소였습니다. 순간 가슴이
선늘해졌습니다.
러시아 여행의 박미하일 교수, 백두산
여행의 연대학 교수들의 말과 행동에서
번뜩이던 고질화된 공산주의를 그 어린
22살의 저녀에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안 살아본
지도자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대통령도 완전히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 세계 어느
곳도 완전히 좋은 나라는 없는 것이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는
여행자들에게까지 공짜로 병을 다 고쳐
준다는데 노인들은 대모를 한대요.
그래도 치도자는 잘 만나야 되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지도자를 잘
만나야지. 그러나 삼황제 시절의 태평
시대에는 임금이 누군지 몰라도 잘
살았다더군. 그런 얘기를 하는데 벗어
있는 곳까지 다 왔습니다. 시가 다
되어 있었고 배도 고팠습니다. 키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도시락을 데워 먹고
버스는 온정리 온천장에 닿았습니다.
약 한시간 반 동안 온천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인당 12달러
37도에서
44도의 온도를 가진 약방사선
라돈으로
신경계톤 지랑 고혈압 루마치서
관절염에 좋다고 합니다. 1월 19일
3시 30분 온정리 온천장
온천장 내부는 넓었습니다.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시간은 충분했고 피로를
풀기에 적당했습니다.
중앙의 둥근 당에는 옥돌이 깔려 있는
옥돌탕. 외부가 보이는 상문과 넓은
네모은 게르마늄과 냉탕이 있었습니다.
건식 습식 사우나에서는 등산으로
피로를 풀고 땀을 빼느라 연신
사람들이 들락 그렸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야외에도
나가 보았습니다. 하늘이 히 뚫려
있었고 금강산 자락이 뾰족뾰족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폭포탕,
옥유탕, 라돈탕이라 뱀마를 붙인
물줄기들이 힘차게 흰 보마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깥
온도는 영화를 넘어 있어서 바닥의
물이 얼 정도였으나 탕은 뜨거운
온천물로 하여 근육을 이완시키며 기분
좋게 해 주었습니다. 옥돌 산책로라고
쓰인 좁은 길에는 얼망절망한 푸른
빛나는 옥돌들이 짧박잘박한 물 속에
깔려 있어서 발바닥을 따끔따끔하게
마사지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황토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흙기 천정과 벽에 두껍게 깔려
있었고 부드러운 온도가 감기 오더니
묵주신공 두 단쯤 바치니까 온 몸으로
땀이 베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온천
내부의 순례를 다 마친 후 다시
수영복을 벗고 열탕에서
엉겨 있는 근육을 푼 후에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버스에 오니 모두 나만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박수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지난 11월부터 개장했다는 온천장은
금강산 등산을 마친 사람들의 좋은
휴식 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12달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돌 한 등이 흙한 중 가져갈 수 없는
금강산 여행 후 아침에처럼 또
검색대를지나 작은 배에 오릅니다.
아침에는 야외용 작은 양주병을 뭐냐고
묻는 바람에 간담히 선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긴 물병도 있어요. 흔들어
보더니 그냥 통과시켰습니다.
묵주도 염주도 성경책도
한국 돈도 절대로 갖고 들어가선 안
되었고 나오면서도 돌 한 조각이라도
숨겨서 나올까 봐 철저히 조사를
합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묵묵히 도장을 쿡 찍어 주며
안경넘으로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는듯한 무심한 표정이 흐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다시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남깁니다.
다시 풍악코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밤이 되자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고 바람도 불었습니다. 배가
정박해 있으니 배 주위가 대나처럼
호원했고 멀미도 없을 것입니다.
열사월의 달은 한쪽이 약간 기운
채둥그릇이
떠 있었습니다. 대한 추의를 하려는지
21일이 대한이라니 내일은 옷을 더
입고 가야 되려나 생각합니다. 여덟
명이 백포도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며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밤
10시 스카이라운입니다.
저녁 시간은 길었습니다. 지난 밤은
멀미를 하느라 신부님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신자로서 신부님과 함께 시간을 갖는
것은 은총의 시간을 나누는 것입니다.
저녁 10시 내일 구령 폭포 등산을
위해 쉬고 계신 김신부님과
이신부님을 제외하고 박신부님,
정신부님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오랜 유학생활에 익숙하신
박신부님은 교수신부님으로
혼당 일도 맞다 하시고 명원장이신
정신부님은 황갑을 지나셨지만 매우
건강하셔서 겨울인데도 내일이도 입지
않으십니다. 모두 금강산 여행 때문에
처음 본 분들인데도
옛날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이처럼
편안합니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남편이 사진을
찍느라 대열에서 떨어지면 신부님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 같아
나는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다에
그런 이야기를 했고 낮에 보았던
금강산 이야기 황경 여원과 보초선
군인들의 장화 이야기 장갑 안낀 붉은
온손의 모습들 깜깜한 동네 이야기를
하며 환경보호 차원에서 이런 철저한
통제는 매우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
번에 몇백명의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
맥주병들로 하여 금강사는 몸살를 앓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끝없이
흘러 밤 12시를 넘어서 각자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제와는 달리 장밖퀴
너무 혼해서 달을 보는 흥치는 없는
듯했고 구름도 많이 끼어 별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남의 기쁨
여정의 기쁨에는 만남이 어뜸이죠.
옥을 수치어도 인연이라 하였으니이
좋은 금강상 길에 길동물을 얻었어요.
얼음 담긴 옅은 술잔히
놓아두고
지난 일 다가올 일을 도란도난 나누니
금강산 한자랑마저
귀 기울이고 듣는 척
[음악]
1월 20일 새벽 5시
구령폭포로
등산하는 날입니다. 입니다.
구룡폭포스는
장전항에서
온정리 신계사
주차장을지나
몽랑관 양지대
상녹수
금강문 옥유동 무대바위를 거쳐
연연주담 미령폭포에서
상팔담으로 갔다가 구령 폭포로 가는
14.6 6k로의
거리입니다. 아침에 방송이 나옵니다.
승객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가바는 5시
40분에 아침 식사를 하시고 나와
다바는 6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십시오. 지금은 영화 14도 바람이
없이 불고 구름끼 날씨라 체감 온도는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아이젠 우위를
챙기시고 옷을 따뜻하게 입으십시오.
자상한 한 안내 방송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어제와 같은 요령으로 검색대를
통과하여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온이
매우 찾지만 3대 폭포의 하나 막연
폭포, 설악 대승 폭포, 구령
폭포라는
그 3대 구룡 폭포에도 어제처럼 왕부
이심리 선어 시간은 걸어야 한답니다.
지소 매수로 구령 폭포 구역을
읊어봅니다.
구룡연 구역 외금강의 어뜸 경치
구룡년이 제일래
신계동 옥유동 구룡동의 골짜기엔
선녀들 놀러왔던 곳 신비함이 감도는
곳
창터 솔밭들이
적송들이 숲을 이루어 장관이다.
[음악]
창대리 마을 전설 솔밭 사이 숨겨두고
무술도 연마하던 곳 복상 있던 상터
솔밭
수정봉과 바리봉
각양 각색 수정들이 바위에 박혔는 듯
둥거러한 통바위가
바리를 를 엎어둔 듯 온정히 지나는
골목 지켜두는
바이 두 개
9시쯤 신계사를 지납니다.
신라 법왕 6년 보문조사가
창근하였다는이
절의 이름은 원래는
신계사 계곡사였는데
절을 흐르는 신계천에는
연어의 도래지로서
알을 낳기 위해 개울을 메우면서
올라오는 연어대를 잡느라고 사람들이
때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살생은 성의 참된 뜻을 더럽히는
것이니 연어를 보내지 말라고 동해의
용왕에게 보문 조사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다음부터는이
신계천에
많은 연어가 올라오지 않는다 하여
신계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유점사 본말 사지
신계사편에 적혀 있다고 합니다. 또
금비록에는 새벽이면 정성껏 풀공을
드리는 한 스님의 정성에 담복하여
부처님이 매일 같은 시간에 딱 울게
해서 시간을 알려 주었다고 다 깨자를
써서 신계사라 했다는데 몇 번의
중수를 거쳤으니 1951년
625로 완전히 타버려서 지금은 3천
석탄만이 버스가 지나가는 저편 오른쪽
멀리에서 쓸쓸히 옛날의 번성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푸른길를 덮고
둥글게서 있는 부도군들도 지나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봅니다.
유기몽 조장은 종이 배고픈 줄도
모르고 가며 금강산 유람을 즐긴
조선조 선비들 때문에 금강삼도
식후경이라는
종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의 유례를
들려 줍니다. 믿거나 말거나 온정리
마을 입구에는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
조국에라고 써 붙여 두었더니 신계동
입구에는 가는 길 험란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금강산에 관광온 유람객들에게는 적절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험란하기는
정말 험란한 그네들의 삶을 길 과연
웃으며 잘 나갈 수 없기에 역설적으로
저리도 크게 써서 붙여두지
않았을까요? 구령 폭포까지 길이
험해도 웃음에 나갈 결심을 해
봅니다. 장전항에서 버스로
14.6km 6km 주차장에서 구룡
복보까지는 걸어서 약 4km를
갑니다. 옛날에 냉면집이었다는
몽난가는 눈을 뒤집혀 쓰고 굳게 컸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만한 경관 속 음식점이라면
아마 줄을서도 한참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얻어 먹을듯한 개공
옆의 좋은 자리였습니다.
[음악]
들려드리는 노래는 조수미 콘서트 넬라
판타지아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음악]
la fantasia
[음악]
Io so
d'anime
che solo
con
[음악]
[음악]
[박수]
[음악]
Fantasia
[음악]
Oscura.
[음악]
Daniel
è solo sangre
libere
[음악]
[박수]
기as
[박수]
[음악]
un vinto caldo.
che soffia sulle
città
come
amico.
Io sogno d'anime
solo sangue
libere.
[음악]
[음악]
[Culture] Poet and essayist Ha Tae-mu's Book Reading Woman 113th episode, Geumgangsan Trave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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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RU1bFZzSm1Y
Transcript
[음악]
안녕하세요. 시스필과 하태무의 책 읽어 주는 여자. 그 111번째
시간입니다. 해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장마가 온다더니 장마는 그냥 우리를 더욱 순가쁜 더위에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매일 안전 문자가 몇 차례나 더위에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냅니다.이 이 더위에 시원한 그늘에서
아름다운 바다나 보면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는 금강산으로가 보겠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금강산 눈을 생각한다면 더워지지가 않네요.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 두 번째 금강산
문화회관으로 갑니다.
제 이야기는 남의 FM 91.9MHz 메가스 라디오와 남의 FM 스마트
전용 앱 그리고 남의 FM 유튜브와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소리울의
올리원 펜션을 통해서 들려 드립니다. 남의 방송국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30분간 진행됩니다. 제방송은 매주 일요일 저녁 9시와
화요일 오후 5시 일주일 셋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음악] 1월 19일 9시 온전각 금강산
문화회관 금강산에 들어가기 전에 천하 제일명산 금강산이라고
붉은 글씨로 크게 써서 걸어둔 대형 주차장이 있는 온전각 휴계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습니다. 400여명을 풀어놓은 온전각 휴계소유
화장실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넓은 땅에 북한의
교회단들이 석으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현대 상선이 지었다는
금강산 문화회관은 1999년 2월에 준공되었다는데
지붕은 커다란 도움어로 금강산 12천
봉우리를 상징하여 시든이 오페라 하우스를 봄 만들었다고 입니다. 마치
조개 껍질을 덮은듯한 610평의 반원 내부에는 624석의
좌석이 특별석 일반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온정의 온정리 마을 겨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휴계소와 문화해가는
수정봉과 관음 연봉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드러납니다. 커피 1달러, 녹두부침 4달러 등 북한의 술, 꿀,
농수산품, 공예품을 한다 하는 온전각 휴계소에는 모두 달러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한 30분 휴식한 후 버스에 타니
엄동식 기사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강릉 방송국에서 보내온
전파였습니다. 북에서 듣는 우리의 소리가 왜 그리 세삼슬에 반갑고 신이 났던지 차는
외금강의 초입으로 들어갑니다. 북의 근로자들의 휴계소가 된다는 김정숙
여사의 별장 건물을 지나고 금강산 식당의 간판도 보입니다. 청량,
유원지, 상점 등 물건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점이 몇 개
있을뿐 유명한 데이트 코스였다는이 한적한 상길엔 딱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작은 벤치들이 군대군데 놓여 있어 쓸쓸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5월이 되면 벚꽃이 피어 아름답다는이 눈덮힌 상길 입구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고 서서 가로로 높고 길게 붙여둔 현수막이 가슴을 선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쪽에서 풍요로운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부러짖지 않으면 안 될 저들의 실상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금강산 여가는 280개의 방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있는
건물이라는데 누가 하루에 100달식이나 주고 잘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민여사도이
여관에서 열흘간 억유되어 있었고 조장들이 안내원 교육을 받는 곳도
이곳이라 합니다.이 려간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기다려도 문이
반만 열리기에 고장난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한심하다는 듯이 그 남조선엔
엘리베이터도 없습니까? 하며 안 열린 반쪽문은 손으로 밀어서야 열리는
거라고 말하며 손으로 쫙 열어젖치더랍니다. 저들의 전기 사정을 한마디로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고
서슬퍼른 어조로 강경하게 나오는 덕분으로 그들은 세계의 유리없는 그들
식의 정책을 계속 펴며 외교 관계에서 늘 기선을 잡는 듯합니다. 원래는
온정리에서 망상정까지 21km를 버스로 이동하고 망상정에서
전신대 망양대까지 3km는 도보로 등산을
하는 코스가 만물상 코스입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워 차가
오르지 못하므로 관음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가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며 망향되는 위험함으로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이틀 전에 왔던 사람들은 눈이 쏟아지고 있었으므로 아예 산에
오르지도 못했다니 아쉬웠지만 금강산 밝이라도
밟아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될 것 같습니다. 7지 8km를
산위로 향한 오솔길로 찔러서 망상정에 따니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안상정에서 오르는 길에 본 한화계의
모습과 관음 뽑고 육화함의 모습은 시조 몇수로 나타내어 보겠습니다.
[음악] 하게
만물상 오르는 왼쪽의 깊은 계곡.
아침 저녁 푸른 안개 골짜기를 돕는다네.
딩구는 바위 머리마다 실름쌓인
하얀 눈. 관는 폭포 비단피를 드리운 듯 누워서
흐르던 물. 수정의 기둥으로 굳어서 반짝인다.
능음한 관음 연봉에서 가르치는 진리의 말.
육화 바이은 동네 양사은이 지었다고 했다.
발빛 비친 흰 바위가 마치 눈꽃 핀
것 같아. 육함 이름 붙인 복생
호연직이 한 끝나는 이곳 이젠 험한 삼길이네.
만상종에서 김일성 교지의 표식바위를 보며
금강산을 아름다운 관광지로 꾸며라.
모일 모시 수령님의 교지가 있었다고
바위의 붉은 글씨로 조각하여 세워뒀네.
멋진 바위마다 새겨둔 붉은 글씨
옛사람 풍유배인 예술품도 아닌 것을
바이는 가슴을 바라 붉게 붉게 물들었네.
삼선암에서 만물상을 보며 드러난 거대한 뼈
눈덮힌 설봉들이 삼나 만상 형상으로 우뚝우뚝서
있는데 쏟아진 폭포는 얼어 청옥처럼 굳어
[음악]
삼선암과 귀면암에서 막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부터는 매우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서서 사진을 찍으면 삼선남의
기묘한 모습이 다 나오고 산쪽으로는 만물상의 모습을 다 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 사진사 한 명이 서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과 김신부님은 이곳에서 사진 두컷을 찍고 다시
내려가시고 우리는 계속 미끄럽고 눈덮힌 산길를 올랐습니다. 귀면남에서
천영 기념물 224호라 합니다.
얼굴 모습 우뚝선 전망대로
이런 일곱 계단 걸어 바위 글씨 읽어보기
눈보라 회리 바람이 객의 가슴 흔드나
험상구전 도깨비의 얼굴 모습 닮았다고
억급 세월 화강함이 이 온갖 풍상
겪으면서 오묘한 형상으로 서서
만물상을 바라보네.
[음악] 삼선남 하늘 높이 잠금을 죽겨든듯한이
거대한 세바이의 높이는 30네지 40m나 된답니다. 한칼같이 날카롭고
자루같이 뭉하고 주먹같이 불뚝하여 만물상의 초병 같아
독선남 홀로서 있어 외로움을 하소연해
[음악] 독선남 삼선남 귀면암의 전설 내
신선이 이 금강산에 와서 만물상이 히 보이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여기에
세상 만물이 다 모인 것 같다. 선녀들의 말을 들으니 마귀들의 장난이
심하다 하니 귀신바이나 하나 만들어 마귀를 내쫓고 우리도 여기서 살자.
그리고는 손녀들의 청을 들어 신선 한 명이 한 면씩을 맡아 무서운 얼굴의
바위를 만들었습니다. 마귀들은 드디어 물러났고 만물상을 가리는 마귀 장난도
없어져 천하 절경을 보며 한가롭게 바둑을 두며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선이 너무 심하게 훈수를 두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쫓겨난 신선은
다일이 홀로 멀리 떨어져서 외로의 바위가 되어 앉았습니다. 새 신선도
만물상을 나란히 바라보면서 나란히 바위가 되어 앉았습니다. 독선암,
삼선암, 귀면암은 그렇게 만물상을 우르러 보는 자리에 거대한 산악을
뽐내며 우뚝서 있었습니다. 안심대까지는 눈이 와서 미끄럽지만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안내를 맡은 조장들이 요소 요소에 서서 조언들을
보살펴 주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바이들을 가르키며 바이들의 얽힌
전설과 바이 이름을 읊어 주고 있었습니다. 곰바이, 도바위,
터키바위, 장군바이, 모인바위 등등 어떤 것은 그럴싸
했으나 어떤 것은 적당한 이름이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름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그 사물을 한정지어 버리는 맹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 토끼로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엔 여우로 보일 수도
있고 각도에 따라 빛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 붙어
있는 이름 때문에 억지로 그 모습으로 보아버리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수십년 풍화작용으로 한쪽이 떨어져 나가거나 깎여 버린 바위에도
한결같이 같은 이름으로 바위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좀 우서운 일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수많은 바위의 이름들을 들으며 개공 옆으로 난
오솔기를 따라 등상객을 위해 만든 쇠줄과 끈을 잡아가며 가파른 산길를
올랐습니다. 도의 사람들과 떨어진 것 같았고 조장의 무선을 들으니 아무리
늦어도 1시까지에는 하산을 해야 한다는 정갈이 계속 와서
마음이 바빠 왔습니다. 눈 때문에 망양대도 망장도 하늘문에도 도저히 갈
수 없어 위험하다는데 갈 수 있다는 안심대까지도 늦은 발걸음 때문에 못가 본다면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이 눈덮힌 개골산을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으니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갈료량으로 발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음악] 절부암 군강산 절경 보며 필이 부는
선녀 모습 청년 하나 반하여도 하소연할 길이
없어 도끼로 바위를 찍어 사랑을 전했단다.
[음악]
망상정에서 삼선암까지 삼선암에서 절부암까지
0.9km였습니다. 절부암에서 안심대까지는
0.4km K 거리는 짧았지만 70도에서 80도의 깎아지른 절벽에
철계단을 놓아두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니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의
모습이 하늘을 오르는 사닥다리를 서로 오르려고 안깐힘을 쓰는 듯 무척
아슬아슬하게 보였습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게 개어 있었고 날씨는 아주
따뜻했습니다. 군대군대 북쪽의 환경 요원들이서
있다고 했으나 400여명의 등상객에 엉켜서 누구가 북쪽 사람인지 조장인지
관광객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아이젠에 의지하여 눈길를 꽁꽁
밟아박하며 미끄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안심 때까지 겨우 올랐습니다.
말 안장처럼 생긴 제사휴계소인 이곳에 오르니 일단 마음이 놓였습니다.
천선대에서 이곳까지 무사히 내려와도 이곳에서는 마음이 놓인다고 안심되라
한답니다. 날카롭고 가파른 바위 귀의한 봉우리 날듯하고 꺾을듯하고
빽빽서 친밀한 듯하고 둔한 듯 민첩한 듯
안심돼서 본 만물상은 천태만상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조순조 송순 선생이선 면왕정가의 황기절이 생각났습니다. 눈덮힌 겨울
개골산의 만물상을 오르는 계곡의 모습을 그려 놓은듯한이 식기를 읊어
봅니다. [음악]
토목이 다진 후에 강산이 무치거늘 조물주 혼사로워 빙을 꾸며내니
구슬 궁전 구슬대와 옥바다 온산이
눈앞에 버렸구나 하늘 땅도 가슴 열어
간데마다 경이로다 80도 내지 90도의 각도로 경사진
눈길를 어찌 내려가나 걱정하며 안심대 위에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숨이 막힐듯 푸른 하늘엔 티끌 한 점
없이 습니다. 안심대에서 본 하늘
시로울프입니다. [음악]
연준봉들 위 드리어진 푸른 비단 툭하고
건드려도 깨질듯한 유리처럼
살짝 돌을 던지면 둥글게 파문 이를듯
되돌아 삼선남 쪽 멀리 연봉 바라보니
눈보라 날리는지 검은 구름 휘감돌고
아득한 산능선들이 화폭 속에 담겼는 듯.
보통 산길도 늘 내려오는 것이 어려웠던 나는 다파른 길을 더구나
미끄러운 눈길을 어찌 내려가나 많이 걱정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남편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일행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볼뿔
기다시피 내오고 있는 내게 건강한 청년이 선뜻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 손을 잡으셔도 된다면 제 손을 잡으세요. 저는 미끄러지지 않거든요.
순간 여자가 가진 특유의 수줍이 발동했습니다. 물에 빠진 형수의 손을 잡아 구해
주는 것이 예 맞는지 안 맞는지 논란하던 조선조의 시대는 너무나
멀어졌는데도 50이 넘는 한물간 여자가 선이의 젊은 청년의 손을
거절할 뻔 했습니다. 쑥스러운 듯 내밀렸던 손을 거두어 내려가는 청년을
불렀습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손 좀 잡을게요. 고맙습니다. 손 하나의
역할하리라니 나는 가파른 산길를 평지것도 팔짝거리며 뛰어내려 왔습니다. 협력의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아저씨는 나반 사조였는데 안경을 썼고 약간의
콧소리를내는 분이었습니다. 산악회 회원인지 너무나 안정된
무서움 하나 없이 어려운 내리막기를 다 내려오니 만상정 휴계소에서 우리
조언들은 아무도 내려오지 않아 환경 요원들과 얘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만상정 왼쪽으로 난 넓은 길에 차 두 대가 멈춰서 있었습니다. 그 길에는
관광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자 여원 두 명이 그곳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이 길로 계속 가면 어디로 가나요? 온정영
고개인데 그곳으로 가면 내금강이 되지요. 이곳으로론 그럼 왜 구경을
안 가나요? 그들은 묘하게 웃으며 낡은 책 한 권을 접어서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그 책 소설책인가요? 네. 남북하더니
공기 때문인지 피부도 곱고 너무 예쁘시네요. 그래요. 예쁘다고 하니
좋은지 배시이 웃습니다. 조심해야 되는 것 때문에 저들도 나도 쉽게
대하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섣불리 먹을 것을 주어서도 안 된답니다.
벌금을 몇 달려 물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권산이 고향이라는 아저씨
한 분이 여원들에게 자꾸 말을 걸더니 집안 살림은 누가 하고 여기 나와
있느냐고 느닷없이 물었습니다. 발끈하는 표정의 여원보다 먼저 내가
말을 받았습니다. 아저씨이 일은 직업이지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조금 분이 풀리는 듯 누구러진 표정으로 아저씨는
직장 안 다녔어요.라고 반문했고 아저씨도 그래 직업하며
반심반이 했습니다. 금강상 구경꾼들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보며 붉은 글씨의
표석을 모독하는 사람이나 싸바 벌금 먹기는 우을 지급삼아 지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세기만의 해후는 이렇게 엄청난
아픔입니다. [음악]
만상정에서 하산하는 길에 만난 아가씨.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와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여행지마다 사람을 사깁니다.
속조에서는 해경이 엄마를 검은에서는 유서울여관 주인 아줌마를 사귀습니다.
성천 아카데미의 교훈도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속칭
보지 마지 마지 마라는이 금강산 관광길에는 사람 하나 못 사귀고 갈
것 같은 쓸쓸함에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민족이고 인간에게 있는 보편적 심리는 갖고 있을 것 같아 무언지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거의 하산하면 환경요원의 일도 끝난다며
남녀 두 명이 일조로 묶여 있는 한조황경 요원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두 갈래로 갈라 묶건 애떼어 보이는 예쁜 처녀였습니다.
참 예쁘네요. 어디 살죠? 온정이에 산다든가 22살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곳에서 산다고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끄집어냈습니다.
그 아가씨는 나에 관해 물었습니다. 자녀가 몇인지 무엇하는 사람인지 나는
두 아들의 어미이고 선생을 했고 수피를 쓴다고 했습니다. 소설이나
시가 아닌 수필이란 장르는 그녀는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선생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빛이 매우 극게 보였습니다. 선생님 하면 왠지
존경심이 옵니다. 어릴 땐 왜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말씀만 배웠는지
7리 시간에 한라산에 관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가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등을 툭툭 치시면서 통일하면가 볼 수 있어. 기다리면 돼라고 달래
주셨습니다. 세월이 참 빨라요. 부모님은 자꾸 늙그만 가시는데 효도를
해 드리고 싶은데 안타까워요. 그녀는 갑자기 친근감을 느끼는지 말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 통일이 언제 될 거라 생각되나요? 글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께서 너는 동일을 볼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죽기 전엔 동일되겠지. 그보다
우리들이 이렇게 걸으며 정답게 순수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바로 작은
동일이 아닐까? 나는 내 이름이 중국 성황의 이름을 본 것이라는 것과
매수연이라는 이름이 참 예쁘고 부르기 좋다는 것. 동일되면 내가 초청하여
한라상 구경시켜 주겠다는 것. 관동별곡의 내용을 언제 배웠냐고
물어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보통 중학교 2학년 때 배웠다고 했는데
13살 때라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4년간이고 전 교육 과정이 다 의미
교육이며 무료라는 자랑을 빼놓지 않습니다.
[음악] 길려드리는 노래는 벨리니 작곡 오페라
노르미 중 정결한 여신 노래는 마리아 갈라스가 하고 있습니다. 잘 들어
주세요.
[음악]
di [음악]
stadiva [음악]
Cristi sacri [박수]
Scranti che
[음악]
in [음악]
[음악]
[박수] [음악]
S [음악]
[음악]
[박수]
[음악]
са
[음악]
[음악]
sempre ti
[박수]
[음악]
[음악] branc
[박수] ancora
[음악] [박수] [음악]
sp in terra sporgi in terra
[음악]
[박수]
[음악]
tu [음악]
[음악] [박수] [음악]
F [음악]
[박수] [음악]
주
[음악]
[Culture] Poet and essayist Ha Tae-mu's Book Reading Woman 112th episode, Geumgangsan Travel 2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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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views Jul 18, 2025 #FM91 #Radio #Gyeongsangnam
[Culture] Poet and essayist Ha Tae-mu's Book Reading Woman 112th episode Geumgangsan Travel 2nd episode
==
==
https://www.facebook.com/cheonhabubu/posts/pfbid0QsDK6HYotfYbRNBXevBv9jNhN8n5zjtuoxTKHpHPq5vFrLhjhRepAf3csJ252iAwl
하태무's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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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상
벌써 3년이 되었단다. 제사상을 차렸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 어시장에서 뽈락만 보면 모조리 사서 쟁반이 그득하게 구워 놓고 실컷 먹어야 직성이 불렸던 사람.
작은 아들은 제사를 지낼 거라고 와서 뽈락만 잡아놓고 회사 출장이라 부른다고 황황히 떠났다.
이미 고성 수도원에서는 아침에 미사를 한다고 신부님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결국 남은 건 나 혼자다.
내가 쓸쓸할까봐
낮에 친구들이 왔다. 그들이 가고 아들 들과 8시에 함께 위령기도를 하기로 했기에 8시에 상을 차렸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테라스 앞에 십자고상과 영정사진을 차려 놓고
사흘 만에 따라 죽은 시누이 몫으로 밥과 탕국 한 그릇씩을 더 떠 놓았다
영혼이 있다면 따라와서 함께 먹지 않겠는가
그의 표정은 오늘 따라 슬플 때 그가 짓는 표정이다.그가 이루고 그가 좋아하던 언덕위의 하얀집에서 보이는 바다는 참으로 고즈넉했다.
사진만 몇 컷 찍었다
아무리 형식적이라 해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은 그의 영혼을 위해 밥 한 그릇은 떠 놓올 것이다.
그걸 아들들도 해 줄 것이란 기대는 천만 없다.
박해시절, 전통은 모르고 신앙만 맹목적으로 따르던 천주교인들의 목숨은 부질 없는 일이었다.
나는 신앙은 신앙! 전통은 전통이라는 입장의 사람이지만 요즘은 달라진 편의주의 세상이니 아이들도 자기식으로 이 날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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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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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뇌동(附和雷同)'
어울림(和)을 핑계로 제 주관 없이 남들과 똑같이 되려고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원래는 '뇌동(雷同)'이라는 단어로, 천둥소리가 울리면 모든 소리가 묻혀서 한 가지 소리로 되어버리는 것, 또는 한 가지 천둥소리에 모두가 정신이 팔리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 생각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에 동조해 버리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 '부화(附和)'가 붙으면서 '부화뇌동(附和雷同)'이 된 것.
논어의 자로편 23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라고 나온다. 이 말은 "군자는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 어울리지만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는 않는 반면에, 소인은 겉으로는 비위를 맞추고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사람들 간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포용하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21대 대통령선거 책자형선거 공보가 배달되었다.
사실은.
아무 관심도 없는 일이다.
정치의 정자도 모르고 관심은 없는데 오늘 우편물이 도착했다.8명의 후보자들은 모두 자기가 제일 적당한 사람이라고 우긴다.
서로가 다 자기가 제일 적절한 지도자라고 하니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한다.
요순 시절에는 왕이 누군지 몰라도 평화롭게 잘만 살았다.
너무 안일한 생각인지는 모르나 국민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냥 산다.
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
더러는 대통령이 잘못하여 자기가 이꼴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만 살고, 일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는게 오늘날의 우리네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화뇌동하여 잘못 뽑은 대통령 때문에 내 아이들이 힘들게 산다면 우린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내가 사귀어보지 않고 잘 알수도 없는 사람을 한 나라의 대표로 뽑는 일은 상당한 부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화뇌동하고 만다.
남들이 좋다니까 따라 하지 말고
제발 좀더 신중하게 스스로의 현명한 판단으로 옳은 지도자가 우리나라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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