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분열병과 인류 | 나카이 히사오 2015

분열병과 인류 | 나카이 히사오 | 알라딘


분열병과 인류 - 정신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나카이 히사오 (지은이),한승동 (옮긴이)마음산책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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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일본 정신의학계의 일인자로 자리했으며 탁월한 문장가로 존경받는 노학자 나카이 히사오의 대표작이다. 정신병 중에서도 ‘분열’과 ‘강박’을 통해 인류의 발전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소유 개념도 없이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비강박적’ 시대의 인류가 강박적인 농경·목축 인류에 떠밀려 어떻게 정신병적 소수자로 치달았는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박은 왜 오늘날의 인류사를 이룩하는 데 미덕이 돼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변천해온 역사에는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따랐는지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간다.

독일과 일본에서 유독 집착기질(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전조(前兆)인 이유는 무엇이며 집착기질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평가는 왜 다른가,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한편으로는 우울병이 없던 시기의 인류에 관한 고찰로 나아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의 배경사를 개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목차


분열병과 인류
-예감, 불안, 원망사고(願望思考)

들어가며
선취적 구상
수렵민적 인지 특성
농경 사회의 강박증 친화성
근대와 분열병 친화자
인류학적 유리함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
-재건 윤리로서의 근면과 궁리

‘응석’의 단념
재건의 방략가?니노미야 손토쿠
재건과 세상 바로 세우기
세속 윤리의 맹점
덧붙임│자기 억제의 윤리?무사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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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나카이 히사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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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현 출생. 교토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했으며 도쿄대학 의학부 강사로 정신의학을 전공했다. 역서로는 슐테 「정신요법연구」(이다 신과 공역) 외 정신분열병, 회화 요법, 병적학 등에 관한 논문 등이 있다.

최근작 : <천재의 정신병리>,<분열병과 인류> … 총 4종 (모두보기)

한승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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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생. 1980년대 중반에 창간된 진보적인 시사 월간지 《말》 기자로 일하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동시에 입사했다. 도쿄 주재 특파원 생활 3년을 포함해 30년간 국제부, 문화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후 출판과 번역 일을 하다가 지금은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국제 및 외교 안보 담당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어둠에 새기는 빛》 《불평등에 맞서는 반주류 경제학》 《제국의 브로커들》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우리는 왜 시국선언을 하는가>,<서경식 다시 읽기>,<사회를 말하는 사회> … 총 5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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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내 몸은 최선을 다해>,<유머 감각을 잃지 마>,<조지 오웰의 문장들>등 총 384종
대표분야 : 영화/드라마 2위 (브랜드 지수 155,180점), 에세이 6위 (브랜드 지수 902,742점), 책읽기/글쓰기 11위 (브랜드 지수 38,00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정신병의 사회적 기원을 밝히는 여정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 국내 초역

2005년 가을, 한국, 중국, 홍콩, 대만, 일본의 출판인들이 모여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를 이루고 지속적이고 진지한 문화 교류를 촉진하자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일과성 행사를 벗어나 출판문화, 나아가 지성의 저변을 굳게 다지려는 이후의 모임들에서 시장주의와 효율성에 내몰린 인문학의 위기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그 결과 공동의 노력으로 동아시아 지성의 축적을 보전하고 나누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는 이렇게 생겨났다. 최근 50년간 출간된 동아시아 각 나라의 책 중에서 자국 인문학의 정수라 할 ‘현대의 고전’들을 추렸고, 그렇게 한ㅡ중ㅡ일 각 26권과 대만 16권, 홍콩 6권, 모두 100권의 책으로 된 목록이 완성되었다. 1982년 일본에서 첫 출간돼 적잖은 반향을 일으킨 『분열병과 인류』 역시 이 중 하나다.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일본 정신의학계의 일인자로 자리했으며 탁월한 문장가로 존경받는 노학자 나카이 히사오(中井久夫)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초역이다.

흔히 정신병은 ‘비정상’ 또는 ‘비이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 무언가 눅눅하고 불온한 것으로서 배제당하지만, 실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모두 정신병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흔한 공상도, 일상의 규칙화한 습관도 모두 정신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역사에서 보건대 이러한 정신병적 기질은 단순히 개개인에 잠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차이와 차별, 배제와 억압의 근거가 되어왔으며, 이것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발전이었을까?
『분열병과 인류』는 정신병 중에서도 ‘분열’과 ‘강박’을 통해 인류의 발전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소유 개념도 없이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비강박적’ 시대의 인류가 강박적인 농경/목축 인류에 떠밀려 어떻게 정신병적 소수자로 치달았는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박은 왜 오늘날의 인류사를 이룩하는 데 미덕이 돼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변천해온 역사에는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따랐는지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간다.

내 의문은 처음엔 소박한 것이었다. 왜 일본에서만 ‘집착기질’이 우울병의 발병 전 성격으로 돼 있고, 독일에서만 그것과 유사한 ‘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발병 전 성격으로 돼 있는 걸까. (…) 일본과 독일의 평가 차이도 주목했다. (…) ‘멜랑콜리형’이 ‘매우 신통찮은 사람’인 데 비해 ‘집착기질’은 시모다가 “모범 군인, 모범 사원, 모범 청년”이라고까지 칭찬했다.
-286쪽, 「저자 후기」

독일과 일본에서 유독 집착기질(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전조(前兆)인 이유는 무엇이며 집착기질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평가는 왜 다른가,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한편으로는 우울병이 없던 시기의 인류에 관한 고찰로 나아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의 배경사를 개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분열병과 인류』는 농경/목축민에게 밀린 수렵/채집민의 특성이 병으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분열병과 인류」, 강박증의 전 단계이면서 일본 사회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집착기질’의 연원을 살피는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신의학사의 배경과 맥락을 한눈에 파악하는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의 총 세 장으로 구성된, 정신의학 전반에 관한 책으로 거듭났다. 『분열병과 인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유용했던 특성들이 시대가 바뀌어 정신병질로 재인식되는 양상을 치밀하게 관찰하며, 중세를 휩쓴 마녀사냥의 배경과 근대 정신병원의 태동 등 흥미로운 역사 소재들을 정신의학사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구성해간다.


인류의 역사는 정신병의 발전사
초기 인류에게 정신병은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 분열병을 앓게 될 가능성은 전 인류가 다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심각한 실조(失調) 형태가 다른 병보다도 분열병으로 발전하기 쉬운 ‘분열병 친화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20쪽, 「선취적 구상」

저자는 분열병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간주한다. 다만 분열병과 더 가까운 사람, 덜 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 저자는 분열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이른바 ‘분열병 친화자’를 통해 분열병의 사회적 기원을 살핀다. 이를 위해 주목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수렵/채집민으로 살아가는 부시맨이다.
인류가 아직 수렵/채집민이던 무렵에는 소유도 권력관계도, 체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강박도 없었다. 다만 시시각각 닥쳐오는 환경의 변화와 위험 속에서 순발력과 협력이 요구되었다.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렵/채집민은 작은 낌새도 예민하게 포착해 즉각 대처하는 능력, 즉 ‘미분회로적 인지 능력’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자연의 피지배자로서 정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미덕 같은 것이었다.

채집자였을 가장 오랜 인류도 오늘날의 채집자들과 마찬가지로 징후적인 것에 과민한 쪽이 유리했으리라는 점은 오늘날 어린이들의 ‘숨바꼭질’의 경우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와 같은 가장 오래된 채집자들은 사냥하기보다 그 자신이 다른 동물들에게 사냥당할 수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부시맨도 사자에 대해서는 사냥을 할 처지가 아니다. 오늘날 그들은 주로 백인이나 반투족으로부터 사냥을 당하는 존재이며, 그들이 얼마나 몸을 잘 숨기는지는 문화인류학자들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도망칠 때 미분(회로)적 인지는 물론 불안도 그 전염력 덕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30쪽, 「수렵민적 인지 특성」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 수렵/채집민은 정주형인 데다 다수자인 농경/목축민에게 점차 밀려났다. “몸싸움에선 합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고혈압”이 안온한 오늘날엔 질병이 된 것처럼, 수렵/채집민의 예리한 지각은 농경/목축민들에겐 과대한 망상으로, 분열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어갔다. 분열병은 이렇게 태동했다. 저자에 따르면 분열병은 문명 충돌의 부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병은 일면 만들어지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문명사회에도 ‘분열병 친화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유의 예리함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알맞게 대처한다. 이성 관계에서 상대방과 유연히 교감하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 덕분에 ‘분열병 친화자’는 소수이면서도 여전히 도태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왜 S친화자는 도태되지 않는 것일까, 라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그에 대한 종래의 대답인 ‘고통과 결핍’에 대한 내성보다도 오히려 성적 파트너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에 있고, 그것이 자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쪽을 나는 선택하고 싶다.
-53쪽, 「인류학적 유리함」


‘집착’하는 직업윤리
강박증 강요하는 사회

정돈과 청결, 적어도 청결하려는 의식, 정연하게 질서가 잡힌 세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도깨비 세상과 거기에 대한 주술적 간섭, 그리고 간헐적인 공격성 분출, 권력과 지배의 질서, 이것은 바로 강박증 구조 그대로다. “문화에 숨어 있는 불쾌한 것”(프로이트)은 가장 이른 시기의 농경 사회 때 이미 성립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33쪽, 「농경 사회의 강박증 친화성」

수렵?채집민과 분열병과 관한 이야기는 제2장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에서 자연스레 농경?목축민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문화, 질서를 추구하는 문화, 계량하고 계측하는 문화에는 강박증의 씨앗이 들어 있다. 저자는 ‘집착기질’을 강박증의 전조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분열병 친화성’과 대립 쌍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수자의 기질이고, 질서와 배제의 논리 위에 유지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집착기질’이 유독 발전의 동력이 되어온 사회, 강박사회 일본을 주목한다.

시모다(시모다 미쓰조)는 사실 그 ‘집착기질자’들이 “타인으로부터 확실한 사람으로 신뢰받고 모범 청년, 모범 사원, 모범 군인 등으로 칭찬받는 종류의 사람이다”라고 단언한다.
-61쪽, 「‘응석’의 단념」

일본에서 ‘집착기질’을 지닌 사람은 특유의 근면성실함 때문에 “모범”으로 인식되지만, 그런 인식은 사실 그리 오래지 않아,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에 따르면 18세 후반, 에도시대 중기에 도입된 화폐경제에 적응하려고 농촌 개조에 앞장선 것이 ‘집착기질자’들이었으며, 이 때문에 ‘집착기질적 직업윤리’가 사회의 주된 실천윤리로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지금껏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것이다.
하지만 “모범”이었던 집착기질자들 중 많은 수는, 고도성장이 끝난 뒤의 일본에서 보듯, 우울증 내지 강박증이라는 파탄을 맞았다. 집착으로 일군 성공 뒤에, 즉 더 이상의 목적을 상실한 뒤에 이어지는 불안과 우울. 이것이 과연 일본 사회만의 문제일까? 『분열병과 인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에만 그치지 않는 열린 논의로 확장된다.


주술 치료, 마녀사냥의 광풍, 정신병원의 탄생…
정신의학의 역동적 흐름

『분열병과 인류』의 백미는 이 책 분량의 3분의 2를 할애하고 있는 제3장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라 할 수 있다.
분열증과 강박증은 근대 이래의 개념이지만 정상과 비정상, 정신장애에 대한 탐구는 고대부터 계속됐다. 그런데도 ‘그리스?로마 / 이슬람 / 서구’의 정신장애 치료 문화는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걸은 것으로 인식돼왔다.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는 이들 3자를 ‘정신의학사’라는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는 시도다. 저자는 종으로는 역사상의 시간을 따라, 횡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 대륙을 넘나들며 정신의학 발전사를 치밀하게 엮어간다.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에서 저자가 가장 깊이 관심을 두는 건 실상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에서 발생했다고 할 ‘마녀사냥’이다. 저자는 근세에 있었던 마녀사냥을 단지 맹목적 신앙으로 일순간 불어닥친 집단 비이성의 산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화폐경제의 침윤에 따른 농촌 안정성의 붕괴, 이를 더욱 악화시킨 16세기 이후의 기후 한랭화와 신대륙으로부터의 은 대량 유입, 종교전쟁, 페스트 유행과 인구 감소, 그것이 야기한 극도의 불안감”(「옮긴이의 말」) 등이 중세 유럽을 마녀사냥이라는 광기로 수렴시킨 역사적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의 정신(廷臣)들은 화폐경제의 침투하에서도 급여를 충분히 받지 못했으며 실직 기회는 많았다. 마녀사냥은 법관직의 수요를 증대시켜 그 지위를 확실하게 만들어주었다. 마녀의 재산은 몰수당해 재판관의 재산을 불려줌으로써 적어도 중반부터는 마녀사냥 재판관에게 큰 매력을 안겨주었다. 몰수가 금지되면 반드시 마녀사냥이 쇠퇴한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민중이 마녀사냥에 환호하며 맞아들인 예가 종종 있고, 또 그런 지지가 없으면 마녀사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민중은 마녀사냥을 지지했을까? 그것은 마녀가 무슨 죄를 뒤집어썼느냐를 보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마녀가 덮어쓴 죄는 대부분 수확이 예정대로 되지 않았다든가 암소가 젖을 내지 않았다든가 폭풍이 수확을 망쳤다든가 밭에 달팽이 떼가 나타나 양배추밭을 망가뜨렸다는 등의 생산력 감퇴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49~150쪽, 「마녀사냥이라는 현상」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정신의학의 태동 아래 마녀사냥은 종식됐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지배의 윤리’들은 언제나 자가 동력을 위해 배제와 차별 그리고 착취의 근거가 늘 필요했고, 정신병과 정신병원은 거기에 억압의 기제로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유의 기제로서 동원되었다. 저자는 ‘근면의 윤리’를 강요한 청교도혁명, 이념적 이유로 자국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부추긴 스탈린 시대 등 온갖 역사적 정황들을 종합해 정신의학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는지 읽어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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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은 지나치게 일본적=지역적, 3장은 피상적. ˝RD 레인˝이 아니라 ˝랭˝임(189p).
madwife 2015-05-0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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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를정신병의발전,특히분열과집착의대립개념으로설명한책.30여년전에나온책이나참신하다.단,원서의어투탓인지모르나읽기는쉽지않다.분열(수렵채집민,소수자,카이로스,분열병,주변적인것에대한감각,혁명,숲문화)v집착(농경목축민,다수자,크로노스,우울증,강박,질서와권력,평야문화)
lawplex 2015-02-21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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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점
고기뜯는스님 2016-07-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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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병과 인류 - 정신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책이다. 한때는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요즘에는 드문 방식으로 접하게 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에 관해서도 이 책에 관해서도 어떤 정보도 미리 알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이 읽게 됐다. 그래서일까? 뭘 말하려고 하는지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흥미롭게 읽는 순간도 있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그리고 꽤 흥미로운 글재주가 부족한 이해와 지식임에도 읽어보려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일본 정신의학계의 일인자로 자리했으며 탁월한 문장가로 존경받는 노학자 나카이 히사오의 대표작이다. 정신병 중에서도 ‘분열’과 ‘강박’을 통해 인류의 발전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소유 개념도 없이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비강박적’ 시대의 인류가 강박적인 농경·목축 인류에 떠밀려 어떻게 정신병적 소수자로 치달았는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박은 왜 오늘날의 인류사를 이룩하는 데 미덕이 돼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변천해온 역사에는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따랐는지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간다.

독일과 일본에서 유독 집착기질(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전조(前兆)인 이유는 무엇이며 집착기질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평가는 왜 다른가,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한편으로는 우울병이 없던 시기의 인류에 관한 고찰로 나아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의 배경사를 개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 것인지 고민되는 사람이라면(이게 뭔 소린지? 라는 답답함을 느낀다면) 그걸 먼저 읽어보고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앞쪽 '분열병과 인류'와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과 같은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대충 2/3 혹은 1/2 을 차지하고 있는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독일과 일본에서 유독 집착기질(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전조(前兆)인 이유는 무엇이며 집착기질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평가는 왜 다른가,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한편으로는 우울병이 없던 시기의 인류에 관한 고찰로 나아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의 배경사를 개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분열병과 인류』는 농경/목축민에게 밀린 수렵/채집민의 특성이 병으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분열병과 인류」, 강박증의 전 단계이면서 일본 사회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집착기질’의 연원을 살피는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신의학사의 배경과 맥락을 한눈에 파악하는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의 총 세 장으로 구성된, 정신의학 전반에 관한 책으로 거듭났다. 『분열병과 인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유용했던 특성들이 시대가 바뀌어 정신병질로 재인식되는 양상을 치밀하게 관찰하며, 중세를 휩쓴 마녀사냥의 배경과 근대 정신병원의 태동 등 흥미로운 역사 소재들을 정신의학사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구성해간다.”





앞선 내용이 어떤 (문화적 혹은 지역적) 특수성과 시대와 세상의 변화에 따른 (정신적) 질병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이라면 뒷부분 내용은 정신의학이 어떤 식으로 주술이나 다른 무엇으로부터 분리되고 떨어져서 의학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서구권 연구자가 아닌 일본인이 서구 정신의학에 대한 (일종의) 간추린 역사를 정리해냈다는 점에서 무척 이색적이면서도 그 지식에 혹은 노력과 열정에 감탄하게 되었다.





“『분열병과 인류』는 정신병 중에서도 ‘분열’과 ‘강박’을 통해 인류의 발전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소유 개념도 없이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비강박적’ 시대의 인류가 강박적인 농경/목축 인류에 떠밀려 어떻게 정신병적 소수자로 치달았는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박은 왜 오늘날의 인류사를 이룩하는 데 미덕이 돼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변천해온 역사에는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따랐는지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간다.”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인문학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지 쉽게 읽어나갈 수 있어서, 말 그대로 전문서적 혹은 전공서적이라 일반인들이 쉽게 읽긴 힘들겠지만 (또는 나란 사람의 수준이 낮아서 어려웠지만) 꽤 재미난 논의가 많아 어렵다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마음에 겁먹고 읽기를 미루기는 아쉬울 것 같다.





“『저자는 분열병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간주한다. 다만 분열병과 더 가까운 사람, 덜 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 저자는 분열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이른바 ‘분열병 친화자’를 통해 분열병의 사회적 기원을 살핀다. 이를 위해 주목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수렵/채집민으로 살아가는 부시맨이다.

인류가 아직 수렵/채집민이던 무렵에는 소유도 권력관계도, 체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강박도 없었다. 다만 시시각각 닥쳐오는 환경의 변화와 위험 속에서 순발력과 협력이 요구되었다.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렵/채집민은 작은 낌새도 예민하게 포착해 즉각 대처하는 능력, 즉 ‘미분회로적 인지 능력’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자연의 피지배자로서 정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미덕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 수렵/채집민은 정주형인 데다 다수자인 농경/목축민에게 점차 밀려났다. “몸싸움에선 합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고혈압”이 안온한 오늘날엔 질병이 된 것처럼, 수렵/채집민의 예리한 지각은 농경/목축민들에겐 과대한 망상으로, 분열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어갔다. 분열병은 이렇게 태동했다. 저자에 따르면 분열병은 문명 충돌의 부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병은 일면 만들어지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문명사회에도 ‘분열병 친화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유의 예리함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알맞게 대처한다. 이성 관계에서 상대방과 유연히 교감하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 덕분에 ‘분열병 친화자’는 소수이면서도 여전히 도태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수렵?채집민과 분열병과 관한 이야기는 제2장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에서 자연스레 농경?목축민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문화, 질서를 추구하는 문화, 계량하고 계측하는 문화에는 강박증의 씨앗이 들어 있다. 저자는 ‘집착기질’을 강박증의 전조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분열병 친화성’과 대립 쌍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수자의 기질이고, 질서와 배제의 논리 위에 유지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집착기질’이 유독 발전의 동력이 되어온 사회, 강박사회 일본을 주목한다.“





”『분열병과 인류』의 백미는 이 책 분량의 3분의 2를 할애하고 있는 제3장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라 할 수 있다.

분열증과 강박증은 근대 이래의 개념이지만 정상과 비정상, 정신장애에 대한 탐구는 고대부터 계속됐다. 그런데도 ‘그리스?로마 / 이슬람 / 서구’의 정신장애 치료 문화는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걸은 것으로 인식돼왔다.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는 이들 3자를 ‘정신의학사’라는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는 시도다. 저자는 종으로는 역사상의 시간을 따라, 횡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 대륙을 넘나들며 정신의학 발전사를 치밀하게 엮어간다.“





위에 얘기했듯 옮긴이의 말이 내용을 아주 잘 정리해주고 있어서 뭔가 더 말할 건 없을 것 같다. 일본의 문화적, 지역적 특수성을 강조한 저자의 입장을 잘 받아들이면서 (혹은 비슷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적 특수성을 따져본 연구는 없을까? 그게 궁금해진다.










#분열병과인류 #정신병은어떻게만들어졌나 #나카이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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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 분열병과 인류 (UP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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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나카이 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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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riques_Castelnuovo
5.0 out of 5 stars 병전 성격에서 본질에 다가온다
Reviewed in Japan on June 17, 2026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나카이 히사오(1934-2022)의 저작 중
이번, 본서 신판을 구입, 즉시 독료했으므로
, 그것에 대해서 리뷰를 쓰려고
생각합니다.

제일 긴 제3장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는
「현대 정신의학대계」 제1권 정신의학사
로서 집필된 것의 정리입니다.
원래는 1970년 「도쿄 교육대」에 있어서
의 강의의 일부(프린트)와의 유입니다.
「도쿄교육대학」은 「동대병원분원」과
도보권내(10분위)에 있었습니다
(당시, 나카이의 근무처가 동대분원).

제3장에는, 예를 들면
·비트겐슈타인(1889-1951)
·토마스 쿤(1922-1996)
·미셸·푸코(1926-1984) 의 인용
이 있어, 「논리철학론회」
「패러다임론」 「구조주의」가 정신의학
에 있어서 제3장의 이야기가 먼저 되었습니다만, 본서 중에서 최초로 쓰기 시작된 것은, 제2장입니다. 논고의 계기는 「왜, 우리나라에서만, 「집착 기질」이 우울증의 병전 성격으로 되어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의문입니다. 집착 기질은, 전형적인 예가 「모범 군인, 모범 사원, 모범 청년」이며 「일을/일의 담그기를, 자택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비근례입니다. 나카이는 집착 기질적인 사람으로부터 나온 윤리/통속도덕은 「근면의 윤리」이며, 그것은 「재건=재건축의 윤리」의 각인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에도시대의 사농공상의 계급마다 검증해 갑니다. 그리고 「기질」→「미질」→「덕목」→「병전 성격」이라고 단계가 올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본서에서 읽어 주시면 다행입니다만, 인문 과학의 하나인 역사학을 정신의학의 고찰에 원용한 수법이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을 정신분열증에 적용한 것이 제1장입니다. 만약 실조해 버리면, 궁극적 으로는, 정신분열증으로서, 형태/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우울증에 있어서의 「집착 기질」보다, 보다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 겠다고, 나카이는 생각합니다. 긴 추론을 거쳐 정신분열증이 전세계 어디에서나 인류의 1% 전후에 나타나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를 위해 '필요'이니까" 라고 나카이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환자에게 접하는 「작법」 즉 임상으로 살려 갔습니다. 이 추론의 과정은 본서에서 읽을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만 「좀처럼 바닥에 도착하지 않는다」「겨우 착저했다」라고 하는 상황과 심경을 토마스 맨(1875-1955)로부터 「역사의 우물은 깊다」를 인용해 말하고 있습니다. 역시 인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결론은 단순히 독특할 뿐만 아니라 '깊은'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 주의를 환기해 두면 Schizophrenia(스키초프레니아)의 번역어는, 2002년, 일본 정신 신경 학회에 의해 「통합 실조증」이라고 개칭되고 있습니다 (본서에도 그 취지, 편집부주 있음). 본서를 읽고, 느낀 특징을 몇 개 들어 봅니다. 첫째, 문체가 투명. 둘째, 은유가 적확. 예를 들면 「댐의 비유」 「등산/하산의 비유」「적분 회로와 미분 회로의 비유」. 셋째, 마르스 감각. (Mars란 고대 로마 신화의 군신) 넷째, 지리적 다양성 (교토, 도쿄, 나고야, 고베) 다섯째, 대상의 수비 범위의 넓이. ⓪분자 생물학자(바이러스 학자) ①정신과 의사(임상과 기초적 논고) ②문필가(에세이, 논란) ③번역가(정신의학과 문학) ④시인(현대 그리스어시 등) ⑤야마나카 야스히로씨(1941-)에 의하면 「자르기」가 특기였던 유입니다 (「종이 잘라」와 같은 기술·예술 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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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토~루
5.0 out of 5 stars 정신의 방식을 대학이 아닌 인류에 위치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2, 2025
Format: Paperback
「분열병」이 「통합 실조증」이라고 바꿔 말해 오랫동안, 그 바꿔 말하는 의미에 나도 강하게 찬동합니다만, 여기에서는, 본서로부터의 인용 등에서는 「분열병」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제1장은 「분열병과 인류」, 제3장은 「서유럽 정신의학 배경사」라고 하는 것처럼, 본서는 「분열병」등의 「정신 질환」이라고 불리는 일을 「인류사」나 「서유럽사」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또, 나카이씨는 「후퇴」로 본서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식에는, 자신의 일단 실천하고 있는 것이 되어 있지만, 어느 거리와 위화를 느끼고 있는 서구 정신의학의 정체를 바라보고 싶다고 하는 강한 저류가 일관하고 있고, 또한 그 바닥에는, “근대 서구”라고 하는 현상은 무엇일까, 라고 하는 생각이 저류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매우 특수한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나에게는 항상 존재해 왔다」(p.251).

"통합 실조증이란 무엇인가는 것은 당시에도 정신의학의 큰 문제였지만, 나는 인문과학의 도움으로 이것을 풀려고 한 것이다"(p.253).

나카이씨는, 의사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사람처럼도 생각됩니다만, 실은, 세계사, 일본사에도 통하고 있어, 시의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인문과학의 도움」이란 이런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졸라 이 일문에서는, 본서 안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기술과, 「치료」에 관련되는 부분을 빼내 봅니다.

인류는 숲의 삶에서 농경의 삶으로 이동합니다. 농경은 '어머니의 대지'를 다치게 하고 '곡물신을 살해하고 작물을 빼앗는다'(p.21) 일이며, 여기에 진정과 정화가 필요하게 되어 '정화는 강박증의 대표이다'(동)와 나카이씨는 말합니다. 이와 같이 정신의 한 상태가 인류사에 자리매김됩니다.

정신분열증의 친화자는 역사상 비상시에는 사회 표에 나와 사적 이해를 넘어 문제에 대응하려고 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즉, 그 정신의 소유자들은 병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있어서는 냄새에 공헌했다고.

“그리스도와 그 사도가 로마 세계의 최하층민의 악마지불, 치료자로서 출현해, 경쟁하는 치료신과의 투쟁을 이기고, 마침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다. 동시에 지상적으로 수단에 의한 일체의 의료를 한번은 부정하게 된다”(p.103).

이 문제는 실은 현대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기도하면 낫다” “치치지 않는 것은 기도가 부족하다”라고 성고의 신앙자도 있으면, “기도도 중요하지만 정신의학적 지식과 원조도 필요하다”는 냉정한 신앙자도 있습니다.

중세 정도까지의 아라비아 문화권에서는, 휴식, 음악, 수욕, 체조 등의 고대 세계의 정신 의료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근면을 가치로 하는 유럽 문화에 계승되지 않았다」(p.110)라고 나카이씨는 말합니다.

「근면」은 나중에 특히 기독교 프로테스탄트의 카르반파로 말해졌습니다만, 나카이씨가 만년에 가톨릭으로 세례를 받은 것에도, 혹은, 후기에서 말해지고 있는 서구 정신의학에의 위화감에도 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가톨릭권에서는 간호사의 상당수가 수녀인 것처럼, 수도원에서 고대 세계의 사실상 전혀 몰랐던 것, 즉 병인의 간호라는 의학적 실천이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이름으로 행해지기 시작했다”(p.113).

나카이씨는 프로테스탄트에 부정적이고 가톨릭에 아군하여 이렇게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에서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내가 굶주리고 있을 때 먹게 하고, 목마르고 있을 때 마시게 하고,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숙소를 빌려주고, 벌거벗을 때 입고, 아픈 때에 휩쓸고, 감옥에 있을 때 방문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장의 이 말도 고대 수도원에서의 병인 간호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염”이나 “미친”(불려진 사람들: 인용자 주)은 가장 단적으로 진리를 고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존경의 생각조차 기대되고 있었다.

현재 '정신병'이라 불리는 정신의 상태를 인류사나 서양사에 놓아보면 이런 점도 떠오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의 치료라는 관점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중세도 후기가 됨에 따라 순례로가 개척되어 순례가 활발해지지만, 다른 병들과 나란히 정신병자를 순례시키는 장소도 할 수 있다”(p.129).

순례도 치료의 길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근대가 되면 정신병자의 순례를 방해하는 벽이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기를 계기로 하는 국민 모두병에 의한 상비군, 의무교육 등의 출현에 의해 인간 집단을 통제하는 모델은 형무소나 병영으로 변환되며, 정신병원도 정신병자만을 수용하고 남녀를 구별하고 종종 제복을 착용시키고 모두를 같은 형식의 방으로 하고, 동일 증상의 병자를 동실에 모은다. 관리상의 능률을 이유로 수천명을 수용하는 대정신 병원이 출현한다

.

이것은 정신병원뿐만 아니라 근대지, 학지, 학회지 그 자체가 이러한 통제, 수용, 구별, 제복적인 것의 착용, 분류와 같은 형식의 정리로 이루어진 폭력장치가 아닐까요.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정신병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되어야하는 것을 주장하고 치료 가능성을 명언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정신 질환은 내과 질환을 모델로 하는 질환으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치료법은 여러가지로 모색되지만, 예를 들면, 경증 환자는 마을을 산책해, 때로는, 마을인의 집에 하숙하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환자가 의사 이외, 환자 이외의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에 의미가 발견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말하면, 퓨리탈리즘의 윤리가 사람을 정신병으로 쫓는다고 H·S·설리반이 고발한 것을, 나카이씨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자선적 치료는 교체되었고, 부르주아지는 치료를 쾌적한 환경이나 수욕, 일광욕에 요구했다. 특히 프랑스와 잉글랜드에 있어서 보양지가 발달했다. 경증의 환자는 종종 전지를 추천받았다”(p.158)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증 환자는 유형수와 수용소에 넣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자유가 있어, 「안심하고 크레이지가 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하는 견해도 나카이씨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17~8세기에는 정신병 환자에게는 의사가 아니라 철학자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는 미국에서는 임상 심리학자가 정신요법의 주역을 맡게 된다고 나카이씨는 지적합니다. 이것도, 「인문 과학의 도움을 빌린다」라고 하는 나카이씨의 말에 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나카이씨는, 역사에 있어서, 정신 의료를 봐 갑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서 가장 큰 정신의학적 발견은 분열병의 “발견”이며, 이것은 고대 이래의 조병·우울증의 2대별을 뚫을 뿐 아니라 정신의학 그 자체의 분위기를 일변시켰다. 그것은 전염병을 극복한다는 19세기부터 20 세기 전반의 의학적 과제를 대신해 20세기 후반의 의학의 가장 큰 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에 대해 다시 철학자, 사회학자, 공중의 눈을 향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발견”에 따옴표가 붙여져 있는 것은, 정신의 이런 방식의 사람들을 「병」이라고 간단하게 위치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유보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철학자, 사회학자, 공중의 눈도 필요하며, '전염병'과 같은 '병'으로 단순히 자리매김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9세기 후반을 통해 정신의학은 대학의 것이 되어, 내과계 의학을 모델로서 급속히 체계화한다. 프랑스 의학으로 시작해 독일에 계승된 정밀한 증상 기재는 성공해, 거의 1930년대까지 거의 모든 정신 증상이 기재되었다. 과학에 의한 무장에 의해 선진 제국을 추월하려고 한 독일의 생리학·생화학적 연구는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력적으로 행해졌다. 또 근대적 대학의 보급과 함께 다른 유럽 제국도 그 대학 정신의학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

저는 대학 정신 의학뿐만 아니라 대학 신학, 대학 사회학, 대학 철학 등에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관여하고 있는 기독교 잡지, 학회지가 아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도, 주조사의 「학회 논문」이 한때는 어색해, 지금도 그 후 유증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지, 학회지 등이라는 것은 지식의 극히 일부이며, 학술논문, 대학신학이 아닌 신학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류사,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대학, 학회 등은 한정된 시대의 일이며, 인간의 지식 전개의 극히 일면입니다.

나카이씨의 이 책의 제목이 「분열병과 학회」 「분열병과 대학」이 아니라 「분열병과 인류」인 것은, 딱히 시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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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사상
4.0 out of 5 stars 신판 분열병과 인류 (UP 컬렉션)
Reviewed in Japan on December 17, 2022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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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고객
3.0 out of 5 stars 의학서
Reviewed in Japan on June 16, 2023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일반인용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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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인
5.0 out of 5 stars 나카이 쿠오 신판 분열병과 인류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23, 2013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초판(1982)을 읽었을 때는 깨닫지 못한 문제점이 이 신판을 읽음으로써 크게 밝혀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타그마티즘과 패러디그마티즘의 개념은 저자의 사상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만, 한층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재독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독자 측의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저자에 의한 가필도 관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합니다. 이 복간된 명저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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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0 out of 5 stars 불후의 명저
Reviewed in Japan on June 14, 2020
Format: Paperback
학식의 깊이, 발상의 참신함, 인간을 보는 눈의 섬세함, 학술논문(?)인데 읽고 두근두근한다.
「새로운 것을 알고 있다」와 「새로운 사고방식을 한다」의 차이를 잘 아는 책. 사랑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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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세이토
5.0 out of 5 stars 특히 전반이 흥미
Reviewed in Japan on November 6, 2014
Format: Paperback
 제 3 장의, 서양 정신 의학사는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너무 재미 있지 않다. 기술이 열렬하고 찍은 느낌이 들고 저자의 예리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제1장, 제2장이다.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지식으로 광의의 정신병의 기술에 뒷받침을 주고, 그것에 의해 이론을 움직이고 있다. 의학이라기보다 문화인류학에 가까운 글쓰기처럼 보인다.
 인간의 각 개정신을 보다 거시적으로 보면 각각이 역사라든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면 다시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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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 윤명
1.0 out of 5 stars 아냐?
Reviewed in Japan on May 4, 2014
Format: Paperback
어쨌든 옛 이름으로 장사하는 정신 분석 의사, 쿠로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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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俵大介
5.0 out of 5 stars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이란.
Reviewed in Japan on April 3, 2014
Format: Paperback
왜 우리는 역사상 이 세상에서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일본인이란 어떤 생물인가. 하나님을, Self에서 Ego로, 바로 분열 기질적인 망상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 그 자체를 담은 훌륭한 저작입니다. 인간학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커뮤니티”라는 말에 있어서, 미국적, 서구적, 일본적인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까지 알게 해 주는, 시사와 기회가 풍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주는 작품입니다. 나카이 쿠오 씨의 인간론, 일본인론은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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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SAY!
5.0 out of 5 stars 제목에서 이미지하고 있었던 것과 달랐습니다.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23, 2023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3장의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2장까지 읽고 「힘들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의외로 슬러슬러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NHK, E 텔레 "100 분 de 명저"에서 알았습니다. (「신장판 후퇴」보다)의 띠의 문장이 재미있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왜 인류의 1%에 정신분열증이 나타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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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井久夫
分裂病と人類
東京大学出版会 1982(新版 2013)

編集:門倉弘・後藤健介

いまは統合失調症という名になった分裂病。
そのルーツは人類の歴史とともに始まっていた。
そういう話を浩瀚な知にもとづいて
瑞々しく書けるのは、中井久夫さんだけである。
だから、いつかぜひ、本書を案内したかった。
よくよく味わってほしい。
その前に『徴候・記憶・外傷』という本と、
PTSD(心的外傷後ストレス障害)について、
少しだけふれておく。
あとはすべて、文明と欧米文化の問題だ。
 昨秋、しばらくほったらかしにしたままだった中井久夫の『徴候・記憶・外傷』(みすず書房)を読んだ。それまで長らく使われてきた「精神分裂病」という名称が、新たに「スキゾフレニア」「クレペリン・ブロイラー症候群」「統合失調症」のどれに決まるかまだわからなかった時期の、中井久夫独特の含蓄のある文章が集成されている。
 その前に読んだ一九九八年の『最終講義』(みすず書房)では「分裂病私見」という副題がついていた。二十世紀まではずっと分裂病の時代だったのである。その次に、症例分析の文献をまとめた『統合失調症』の二冊組(みすず書房)が上梓されたのだったと憶う。『徴候・記憶・外傷』の一冊はこれらのあいだのちょうどトランジットな思考帯域になっていて、サイン、トラウマ、メモリーに関する幅広い精神疾患をめぐる思考がよく辿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中井の本はどれも知的な刺戟に富むのだが、やはりたいへん興味深かった。


本書を刊行した当時の中井久夫(1982年頃)
 この本には次のようなケネディ時代からレーガン時代までのアメリカの事情が書いてあって、そうか、そういうことだったのかと合点するところがあったので、忘れないうちにそのことをちょっと書いておく。
 精神医療が大きな転換を見せるのは一九六〇年代の半ばだったそうだ。そのころアメリカは力動精神医学を中心にしていたのだが、ケネディは精神科病院の病床を五〇万床から一五万床にへらす計画をたった三年間で実行してしまった。精神科病院をへらすかわりに各地にメンタルヘルスセンター(精神保健施設)を設立するという計画だ。
 しかし、新施設にはあまり患者が来なかったらしい。そのうち案の定、カーター夫人が世界精神保健連盟(WFMH)の総会で「あれは失敗だった」というスピーチをした。患者たちは多くがホームレスとなり、ギャングに上前をはねられる生活保護費に頼るようになったからだ。
 結局、メンタルヘルスセンターはレーガン時代に廃止された。といって精神科病院の数が復活したわけでもなかった。アメリカの私立精神科病院には有名どころではチェスナット・ロッジなどがあるのだが、この時期にはその病床数も数百床から五〇床にへった。そのためロッジのあとの建物は廃墟同然となり、患者が勝手に住みついて、薬だけを病棟に貰いにいくようになったのだという。


1963年、精神保健施設設立を決議し、地域精神衛生法に署名するケネディ大統領

米国メリーランド州ロックヴィルにあったチェスナット・ロッジ
 そういうことがあったのかと思った。アメリカでは七〇年代に、システム療法から家庭療法まで、マラソン療法から絶叫療法までといった、多様な精神療法時代がやってきていた。ぼくもそのうちのひとつ、システム療法と家族療法にアプローチしていたリン・ホフマンの、タイトルだけは立派な『システムと進化』(朝日出版社)などを読んだことがあったが、何を狙っているのか了解しきれなかった。

 アメリカにおける治療法がそんなふうに乱打されたのは、二つの大きな問題が新たに広がっていたからであるようだ。
 ひとつはベトナム帰還兵問題だ。帰還兵は残忍な殺傷に興じたとアメリカ国内で何度も報道されて、しかもアメリカ史上初の敗戦であると批判され、歓迎されなかった。帰還兵は空港でツバまで吐かれたのだが、兵士たちには癒し難いトラウマ(trauma 心的外傷)がのこっていた。このあたりの事情は吉田秋生の傑作マンガ『バナナ・フィッシュ』(小学館文庫)もみごとに描いている。
 もうひとつはフェミニズムが深化していった。ベティ・フリーダンやリュス・イリガライなどの、さまざまなラディカル・フェミニズムが派生した。ここに、性差別やレイプや家庭内暴力による深刻なトラウマ問題が浮上した。
 ベトナム帰還兵と性差別などをめぐるトラウマ問題は、当時の精神医学をリードしていたアメリカに転換をもたらしたのである。これが多様な治療法が乱打された理由だったらしい。
 そして一九八〇年代になると、PTSD(心的外傷後ストレス障害)をどう捉えるかという議論と療法が、とくに注目されるようになった。念のため、PTSDは“Post-Traumatic Stress Disorder”の略である。


ベトナム帰還兵を題材にした映画
左『ダーティハリー』(1971)
右『タクシードライバー』(1976)

PTSDを起こした代表的事例(ドクタートラストの調査より)
 PTSDの名は一九八〇年のDSM-Ⅲに初めて登場した。それによるとPTSDには、精神的不安定が不安・不眠などの過覚醒症状をおこす場合、トラウマの原因にあたる障害に関連する現象や事物を回避するようになってしまう場合、事故の体験や犯罪の目撃に関するフラッシュバックがおこる場合など、さまざまな症状がある。いわゆる「いじめ」がPTSDにつながることも多く、重大な出来事の記憶に悩んだり、事後的に記憶が再構成されていったり、実際にはおこっていないことがあたかもあったかのような出来事の記憶になったりすることも、あるらしい。 
 しかしふりかえってみると、そういうPTSDをめぐる研究にはそれなりの前史があったと中井は言っている。

 第一段階は、十九世紀後半からのヒステリー研究だ。とくにフランスの神経学者ジャン゠マルタン・シャルコーは連続的な暴力やレイプに苛まれていた若い女性たちの症例を研究して、ヒステリーは神経症であると推理した。それとともに当時の鉄道事故後の“鉄道脳”も治療の対象となった。そこにPTSDの前史が立ち上がっていた。
 第二段階は、フロイトとピエール・ジャネが対抗しながら研究アプローチをした段階で、患者との「対話」を通して変成意識(アルタード・ステート)やヒステリー症状が注目された。二人とも幼児期の外傷と性的な外傷を重視したが、ジャネはそうした症状を「解離」と呼び、ヨーゼフ・ブロイアーは「二重意識」と呼んだ。解離は最近の英語では“dissociation”になっているが、ジャネは“désagrégation psychologique”と呼んでいた。
 第三段階になると、第一次世界大戦がふりまいた戦争外傷が患者のみならず、軍隊上層部と治療者たちを追いつめ、PTSDが世界規模の症例問題であることが少し認識されるようになった。けれども戦争が終わると研究の熱はさめた。それが復活するのはエイブラム・カーディナーの有名なモノグラフ『戦争ストレスと神経症』(みすず書房)が一九四一年に発表されてからだった。
 アメリカ軍としては戦争ストレスなどを認めるわけにはいかない。「正しい戦争」が疑われるからだ。しかしノーマン・メイラーの『裸者と死者』(新潮文庫)などを除くと、国の犯罪に食ってかかる著述や研究はあらわれなかった。こうして第二次大戦後もPTSD研究が進むということはなく、むしろ伏せられていったのだ。
 そのアメリカの精神医学界が本腰を入れざるをえなくなったのが、やっとベトナム帰還兵問題からなのである。朝鮮戦争において一般人を虐殺していたことによる外傷が俎上にのぼるのは、さらに一九九九年まで持ち越された。ようするに、PTSDに似たことはずっとおこっていたのである。それをいつ社会や医療が“認知”したかというだけなのだ。
 いまでは、このような問題はずっと広範になっている。文化大革命~アフガン戦争~自爆テロ~9・11というふうに転じてきた現代史のバースト(事件の起爆)のすべてが、なんらかの意味での人類史的なPTSDをもたらしているからだ。
 中井はこのような流れを前にして、ここには「古層の種族的記憶が損なわれるような現象もおこ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も書いていた。


19世紀末、パリのサルペトリエール病院でヒステリー患者の治療にあたったフロイト(左)とジャネ(右)
 そのほか、『徴候・記憶・外傷』にはいろいろな指摘と示唆が盛りこまれていて、これを読むぼくの自己像がまたひとつ脱皮させられていくような共鳴をおぼえたものだ。このような共鳴は中井さんの本を読むたびにぞくぞく感じてきたことで、そこからは多くの文明的な視点がそのつどもたらされていた。こうした文明的な俯瞰力は、残念ながらというか、遺憾ながらというか、当時はミシェル・フーコーか中井さんからしかもらえないものだった。今夜の千夜千冊に選んだ『分裂病と人類』もまさにそういう一冊だ。

 さて、話のついでに想いおこしてみると、ぼくが中井さんの本を初めて読んだのはずいぶん前にさかのぼる。最初は「遊」を編集していた七〇年代前半に「風景構成法」がちらちら話題になっていたので、それを詳しく知りたかったのだがうまく出会えず、代わりに書店で目に入った飯田真との共著の『天才の精神病理』(中央公論社の自然選書)を読んだ。
 ふうん、ユニークな視野で綴られているなと思い、当時しばしば会っていた慈恵医大の岩井寛先生に中井さんのことを訊いたところ、「うん、とても独創的な発想の持ち主で、ラテン語もギリシア語もオランダ語もできるらしい」と教えてくれた。とくに「中井さんは若い頃にヴァレリーの研究者になるか、それとも医者になるのか、かなり迷ったらしい」と言ったことが心に残り、その後に『分裂病と人類』を読んだとき、ずいぶん変わった記述の仕方だったように見えたにもかかわらず、あっというまに埋没できたのは、なるほどヴァレリーに耽った人の文章だと合点できたからだった。
 この点については、ずっとのちに『私の日本語雑記』(岩波書店)を読んでみて(これもおもしろい)、中井がどのようにヴァレリーに惚れたのかよくわかった。


2010年に発行された『私の日本語雑記』(岩波書店)

ポール・ヴァレリー(左)と岩井寛(右)
 風景構成法(Landscape Montage Technique)については、とくに分け入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が、日本で独自に開発された心理療法で、ロールシャッハ・テストのような侵襲性がほとんどないこと、クライエント(患者さん)の進行中の心理現況を編集的に推察できること、中井がそこからさらに「相互限界吟味法」を独自に考案し、それが児童精神科医の山中康裕によってドナルド・ウィニコットのスクイグル法などと結びつけられて、独特のMSSM(Mutual Scribble Story Making)に発展していることなどを知った。
 MSSMは物語療法のひとつである。子供用に「交互ぐるぐる描き投影・物語統合法」なども開発されていて、いまはかなり研究が深まったナラティブ・アプローチの先駆的手法として注目されている。


中井久夫が考案した風景構成法。木、山、川、道、家などを指示された順に描き、一枚の風景を完成させる。
 それでは、ここからが本書『分裂病と人類』の話になるのだが、かなりの重戦車がアタマの中を驀進していったような読後感だったことをいまでもありありと思い出せる。二つのごっつい問題が提示されていた。
 ひとつは、ヨーロッパの精神病とそれに対処する精神医学がいったいどのような背景によって突き動かされてきたのかということだ。もうひとつは、中井さんが持ち前の執着気質の読みをもって日本の近世の「直し」という言動に迫ってみたというものだ。
 後者のほうには「治し」ではなく、世直しの「直し」という言葉が強調されていた。二宮尊徳や赤穂浪士を通して日本人の“勤勉の精神医学”が言及されてもいた。こういう観点は日本史学的にも初めての試みで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が、今夜は前者の記述の中身について、すなわちヨーロッパにおける精神医学背景史を俯瞰する中井さんの“読み”について、ぼくなりの“編集読み”をもって、ごくごくはしょったメルクマール案内をしておくことにする。それでも存分に人類と分裂病の蜜月関係の歴史が見えてくるはずだ。


『二宮尊徳翁』(幸田露伴)の口絵より
尊徳が薪を担ぎながら読んでいるテキストは「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斉家・治国・平天下」の八条目など、朱子学のエッセンスを書いた『大学』である。
 中井が大前提にしたことは、分裂病は人類が誕生してほどなく、われわれの心身にくっついてくるようになった症状だろうということだ。中井はこの仮説にのっとって「人類は分裂病的親和性が強い動物なのではないか」と暗示する。
 なぜなら狩猟民の精神は貯蓄型ではなく、おそらくまだ複雑な祭儀もなかっただろうから、あまり分裂気質をもたないですんだのではないか。そうだとすると「収穫と刈取りと蓄え」を重視する農耕民の社会のなかで、強迫的な神経症の前兆が始まったにちがいない。ここには農耕の予祝をつかさどるシャーマンなどがいて、当然にトランス状態の感染もあったはずである。きっと当初からアルコール依存も発症していて、心身のバランスに無視できない影響を及ぼしてもいただろう。
 つまり人類の多くが農耕社会の発展とともにこうしたさまざまの本質的倒錯をへて、文明的な人間になったのだ。
 これだけでも、かなり示唆に富む指摘だが、ではこのような見方を多くの精神医学者たちがもってきたかというと、必ずしもそうはなっていない。精神医学は近代人の「心の病い」の分析から入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大きな「人類の病い」「文明の病い」という観点は、長らく看過されてきたのだ。

 精神医学という学問はきわめて新しい。それにくらべると、古代このかた続いてきた「治療文化」の歴史のほうがずっと長く、大きかった。そうであるなら、その「治療文化」のなかにこそ精神医学の前兆を読みとら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なのだ。その出発点は古代オリエント社会の呪術的世界観と、そこから脱するかに見える古代ギリシアのホメロス的世界観である。
 古代においては、神を知る者は“自己処分能力がある者”とみなされた。知はつねに万能なのだ。そこでどうなるかといえば、「知っている」という状態と「知らない」という状態が対置され、君主や哲人や宗教人はそれを判断する専門家だともくされた。やむなくこの専門家たちは何を「知るべきなのか」を考えた。老子も孔子も、ブッダもプラトンも、それを考えた。治国や生活にぴったりしたことを考えようとしたのだ。
 一方、よけいなことを知っている者は、きっと「無法なことを知っている者」とされたわけである。案の定、かれらは“乱暴者”“邪魔者”として扱われた。

 これで何がおこったかというと、古代ギリシア人の最大の道徳の表明が、社会的評判を顧慮するための「アイドース=羞恥」になったのだ。これが「レリギオ」(religio)である。のちのちには「合理」となり、ついで社会的な「情動の基準」になっていった。しかしこのとき、かれらは人間社会にとって最も重大だったはずの「不安」というものの正体を、おおかた隠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不安はアーテー(ãtê 狂気)とみなされた。
 続くアルカイック時代ではドーリア人の侵入が悲惨と貧窮をもたらしたため、ポリスが形成されるのだが、すぐに人口過剰となったので植民・交易・戦争にその解決を求めた。社会の流動性にさらされた古代ギリシアは、なるほどソロンの立法などによってこれを調停しようとはしたが、結局は人間の無能が痛感されたのであったろう。
 市民たちのコロス(koros 成功がつくる自己満足)は、すぐさまヒュブリス(hybris 奢り)を生み、ヒュブリスはネメシス(nemesis 怒り・妬み)を呼んだ。それで、どうなったのか。ここで罰せ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が、レリギオ(合理)に合わない「狂気」というものだったのだ。レリギオはレギュレーションをつくる原動力である。

 この時代の「狂気」は今日に言うようなものとはかぎらない。当時、狂気とされるのは、社会のバランスを取り戻すために巧みに導入されたものだったろうと、中井は言う。さもありなん、だ。
 哲人プラトンは、そのように導入される「巧みなバランサーのような役割」としての狂気のはたらきを、すかさず分類してみせた。すなわち「予言的狂気」(アポロン)、「密儀的狂気」(ディオニソス)、「詩的狂気」(ムーサ=ミューズ)、「エロス的狂気」(アフロディティ、エロス)である。これは、狂気を「神のはたらきによって習慣となった社会のしきたりを逸脱することによって生じるもの」と定義したせいだった。


左からアポロン(ベルニーニ作、像左)・ディオニソス(カラヴァッジオ作)・アフロディティ(ローマ時代の像)
 このような狂気の分類と定義は、今日の精神医学が裁定するような狂気ではない。プラトンの狂気の規定は、ギリシア神話的であり、古代社会なりの治療法そのものだった。こうしてオルフェウスもピタゴラスもエンペドクレスも、この、仮りに導入された「狂気の解説」を治癒の補助とするような哲学を説く。このことはソクラテスがすすんで「精神の産婆」を任じようとしたことにもあらわれている。
 ということは一言でいうのなら、古代ローマにいたるまで、「狂気」はいわゆる病気ではなかったのだ。むしろ未知の力を解説するための対抗力だったのである。

 古代ギリシアはやがてシリア・レバノンふうの東方思想とも、スキタイ系のシベリアシャーマン文化とも接触して、ここに医神アスクレピオスやフェニキアの医神エシュムンといった、地下から湧いて出たかのような治癒力にめぐりあう。
 医術はしだいに世俗化されていった。夢判断をするグループやヒポクラテス学団のような医療的職業倫理をもつグループもあらわれた。これらの知識はヘレニズム期にいったんマケドニアに集約され、医学の中心もアレクサンドリアに移った。そこではポリス的な人為的人間像から逸脱したものが神々の治療の対象とされ、そのための大図書館がつくられた。
 古代ローマは以上の治療法を「コンペンディウム」(必携するもの)として継承する。そうなると、病気は一方ではいまだ神々の瑕疵(傷)ではあるが、他方では誰もが覗いてかまわないカタログなのである。四世紀のガレノスのような大治療家はこのカタログ化に抵抗した。ガレノスは病気は医師によって治療されるべきだと表明した。
 そこへ怒濤のごとくなだれこんできたのが、北東ユーラシアのフン族などに押されたゲルマン諸族だった。この“蛮族たち”はすでにローマ世界に広がりつつあったキリスト教を便利な「心の道具」としつつ、さまざまな異国の信仰や価値観をもちこんだ。いきおい、病気と狂気のカタログが膨らむことになる。

 時代がすすんでヨーロッパ中世を通じて重視されたのは、今度は「森を通過する不安」をこらえるための騎士道精神というものだ。
 九世紀から十世紀にかけてのヨーロッパの荒廃は目にあまる。多くがカシなどの二次森林におおわれ、村落を中心とするわずかな耕作地にもオオカミがあらわれ、人を襲った。グリム童話が描いた社会そのものだ。そうしたなかで騎士として尊敬されるためには、この恐ろしい森を駆け抜ける勇気が要求された。そのため中世では、騎士たちの勇気とロマンにともなう不安が語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英雄になれない騎士はいくらでもいたからだ。かくてそうした騎士たちの集合的な伝承や記録が束ねられてアーサー王伝説やロビン・フッドやニーベルンゲン説話などの、いくつもの騎士道物語や恋愛詩になった。これらの物語や詩は、騎士たちの人格に宿る愛についての希求と不安の心情を、新たに説明可能なものにしていった。


英雄ジークフリート(左)の悲劇的な死と、妻クリームヒルト(右)の復讐劇を描いたニーベルンゲン説話。
 一方、中世の地中海はイスラム勢力の制圧圏である。そのため東方世界との通用ルートは、ノルマン人による黒海を経由するものだけに狭められた。そのなかでラテン文化がしだいに凋落していったのだが、ブリタニアでの出来事やベネディクト派の修道院はこれらの難をまぬかれた。ベネディクト修道院ではカッシオドルスらが活躍し、医療文献を解読したり翻訳したりした。しかし、その治療は当然ながらキリスト教の価値観にもとづいていた。
 十二世紀以降、ヨーロッパに農業革命がおこると、重い鋤による深耕農耕と牧畜とが統合して三圃農業が普及する。それとともに森林(二次森林)が急速に伐採され、そこへアラビア人による医療文化が流れこんだ。さらにそこに東方における南北経路がタタール人によって支配されるという事情が重なると、北方産業圏は中央の毛織物産業との新たな連絡路をもっぱらライン川などに求めるようになった。いっときライン川が“僧院渓谷”と称されたのは、このような事情が医療に結びついたためである。
 そんな事情が続いた十三世紀をすぎて、イタリア、南仏、ライン河畔、パリに次々に大学が成立し、サレルノ、ナポリではついに医学校が誕生した。


サレルノ医学校の「外科」を描いた絵
ギリシャ、ラテン、イスラムをへてサレルノに設立され、ボローニャ、ナポリ、モンペリエの大学での発達に影響を与えた。
 大航海時代が始まっていくと、「森の不安」の克服は「海の不安」を克服する船長や乗組員のものになった。投資、造船、港からの船出、航海、難破、獲得、帰港、加工、販売という一連のプロセスが、新たな富とともに破産の恐怖や不安をもたらしていった。遠洋航海に対する投資をめぐる一喜一憂が社会に「会計の不安」をばらまいたのだ。
 森から海への転換は、社会における「貸方と借方」という正負の価値観を生み落としていった。中井は、この変化のなかで「船長」(captain)という絶対的リーダーシップをめぐる価値観と、このあと勃興する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との結びつきも生まれていったのではないかとも見ている。これは炯眼だ。
 このように見てくると、ヨーロッパの医療技術や医学思想が、あたかも健全に近代医学に向かって進み始めたように見えるかもしれないが、とうていそんなふう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なによりペスト(黒死病)の猛威には、誰もがなすすべをもっていなかった。ハーメルンの笛吹きのような者たちが懸命にネズミを村外に誘導しようとしたが、とても対策にはならない。各地の衛生面もひどいままで、ペストだけではなく天然痘や赤痢や疫痢も猛威をふるった。それでも、これらは病原菌による厄災だった。いわば自然の猛威だった。問題は「人の狂気」の扱いのほうである。
 そこに登場したのがヨーロッパ中に広まった魔女狩りや魔女裁判や異端審問だ。これらはきわめて人為的に狂気治療を歪曲していった。


14世紀のフランスで描かれた黒死病の絵

『ハメルーンの笛吹男(Pied Piper)』の現存する最古の水彩画
(13世紀の中世ドイツ)
 魔女狩りや異端審問の背景には、中世からルネサンスにかけて、錬金術、占星術、魔術、カバラ主義、集団ヒステリー、タランチュラリズム(毒グモ恐怖症)、サバト主義などがうごめき、ときにネオプラトニズムやヘルメス主義の名を借りつつも、貴族や知識人や僧侶のあいだに流行しつづけたという事情がある。
 これらはいずれも怪しげな妖術めく傾向を共通してもっていたのだが、それを正当化するために、あえてもっと怪しげで恐ろしげな魔女を次々に仕立てていった。魔女狩りこそを正しい治療だとする必要があった。民衆たちも魔女狩りを支持した。飢饉や乳牛の大量死や害虫の発生などを魔女のせいにする必要があったからだ。魔女は群衆の歓呼に迎えられ、焼かれていった。


当時描かれた魔女の絵

1571年にアムステルダムで行われた魔女狩りを描いた版画
 魔女狩りの流行は狂気の本質をそうとうに見失わせた。ひとつには「狂気はクレンジング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社会慣習を助長させた。もうひとつには魔女裁判にかけるほどの者でなくとも、つねに異常者やその候補者を「隔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判断を助長した。
 すでにハンセン病の病者は古代このかた隔離されてきた。その惨状は目にあまるものではあるのだが、中世ヨーロッパではそこへペストの流行が重なり、虚弱なハンセン病者が大量に没していった。このため狂者こそが収容される対象となり、難病と狂気はしだいにまじったまま隔離の対象になっていった。ミシェル・フーコーが『狂気の歴史』や『監獄の誕生』(ともに新潮社)で述べたのはこの歴史的実情である。


ハンセン病を根絶した国として知られるマルタ島に開設された検疫所「ラザレット」(16世紀)
 精神病者は隔離施設に入れられるばかりではなかった。病者を船員にまじえて港から港へたらい回しにする“阿呆船”に乗せられもした。セバスチャン・ブラントの『阿呆船』(現代思潮新社)やヒエロニムス・ボッシュの絵に有名だ。世界の港町に“ならず者”や“酔いどれ”がふえたのはそのせいだという説もある。
 むろん魔女狩りや狂気の収容に反対する一部の知識人もいた。エラスムス、イエズス会士、プロテスタント、モンテーニュ、セルバンテス、啓蒙思想家などだ。

 魔女狩りの終焉は近代医学の萌芽につらなっている。中井はそのことをオランダを例に説明した。オランダでは魔女狩りが早く終息したのである。
 オランダを中心とする低地諸国はノルマンの却掠がおわったあとは、最も密集した自治都市群となり、北方ルネサンスの文化センターとなり、ハプスブルク王家との関係をもつスペイン先進文化の出店となって、かつ、スペインの異端審問から逃れるユダヤ人の集積地になった。
 そのうえで、オランダはブルグンド王国の宮廷文化から自己脱皮をはかったカルヴィニズムの一大拠点となったわけである。オランダではイギリスのピューリタン革命よりずっと早く、カルヴァン派が移民・中農層に支持されて、都市文化を自立させていたのだ。そこにはさまざまな問題を「範例」によって解決する範例主義が確立した。
 以上の動向がイギリスの市民革命、フランスの大革命とともに、ヨーロッパにおける市民社会の最初のモデルとなり、近代精神医学の橋梁となった。たとえばライデン大学が臨床所見を網羅する病歴の整理を始めたことは、これらの先駆例だった。エディンバラ大学が近代臨床医学の拠点となりえたのも、オランダ留学の帰国者たちのせいだった。
 今日、近代精神医学の先蹤者ともくされるトマス・シドナム、ウィリアム・カレン、フィリップ・ピネル、ヴィルヘルム・グリージンガーらは、いずれもこれらのオランダ・モデルの恩恵をいかした内科医であり精神科医である。
 なかでフランス王立植物園で植物分類に従事していたピネルが、植物学者のソヴァージュやカバニスの後継者として精神疾患の分類にとりくんだ。リンネの影響だ。大きな前進ではあろうが、ぼくはこの話を知って「心の病い」も植物の分類から始まったのかという、なんとも奇妙な感慨をえた。ピネルを継承したのはジャン・エチエンヌ・エスキロールだ。


エスキロール(左)は、フランスの精神病患者処遇や教育に尽力し10個所に保護院を創設した。右は「白痴の監禁」を描いた図版(1983年)
 
 オランダ・モデルは当然のことに、イギリスをへて新大陸アメリカのピューリタン植民地にも流れた。そして当然のことに、ヨーロッパから見れば時節おくれの「セイレムの魔女狩り」などをアメリカにもたらしもした。それこそ、ナサニエル・ホーソーンの『緋文字』(新潮文庫・岩波文庫)が描いたヘスター・プリンの悲劇である。
 これらのことから中井は、もしウェーバーが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が資本主義に与えた影響があると言うなら、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が精神医学にもたらした影響も三期に分けて辿れるとみなした。
 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の影響は、第一期はオランダにおいてカルヴィニズムの倫理と労働治療が近くなった時期で、職業倫理にもとづく医師たちが勤勉に収容所を定期的に訪れることにあらわれる。「回診」という言葉のルーツはここにある。
 第二期は産業革命とともに工場社会に支配と生産と労働が均一化してからのことで、ここには「工場」とともに、アダム・スミス以降の「市場」がかかわってくる。そこに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と精神医療感覚が重なった。初期の資本主義にはイギリスのコモン・ローやロー・オブ・エクイティの相互補完がおこっているのだが、それは経営層に産業を促進することは社会療法でもあろうという幻想を抱かせた。
 第三期は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産業革命、資本主義に加えて、これらに社会改良主義、産業社会主義、組合主義、民主主義がまぜこぜになることで、二一世紀の現代にまでつながっている。こうして精神疾患は「働く現場」の拡張にともなって広がっていったのだ。

 この先、中井は精神科病院というものが誕生していった背景、大学に精神医学の領域が確立していった背景、さらにヨーロッパにおける力動精神医学の系譜と正統精神医学の系譜とが分派していった背景、プロザックなどの向精神薬が“猛威”をふるうようになった背景なども独特にスケッチしているのだが、今夜はそれらをカバーするのは遠慮しておく。
 しかし、中井がこの『分裂病と人類』の最後に何を書いていたかということは、ぜひとも強調しておきたいと思う。中井は次のようなことを書いていた。


力動精神医学成立の流れ

正統精神医学成立の流れ

力動精神医学と正統精神医学の比較
 ヨーロッパにおける「神なき時代」の蔓延と精神医学の広がりは、おそらく相互密接につながっているはずである。しかしピューリタニズムが「父なる神」を軽視したことと、資本主義がプロテスタンティズムの勤勉を重視したことが、どこかで「心の病い」を増長させたのである。これらは何に一番強くあらわれたかといえば、それはオートクリティック(自己批判)に皺寄せをもたらした。
 一方、多くの難病が二十世紀になって治療可能になっていったことは、疾患をしだいに「精神」に追いやったことと無縁ではないだろう。たとえば結核はペニシリンによって弱毒化させたのだが、そのぶん結核はメンタルな病いになってもいったのだ。
 これでわかるように、ヨーロッパが精神病を発見し、その分類と治療に躍起になったことは、世界史の全体からみればきわめて例外的なことだったのである。アニミズムやシャーマニズムから資本主義社会や会社を守ろうとすれば、社会や会社に「うつ病」がひろがるのは当たり前なのだ。
 そこで、中井は付け加える。これらに対して、大乗仏教などが「自立」と「中観」を一緒に語れるようにしたことは、欧米的なるものとはずいぶん異なる文明や社会における価値観の可能性をもたらしたはずである。ただ、そのことをアジアも日本も、いまなお世界に対して説得力をもって発信していない。とくに近代の仏教は「狂気」や「異常」から逃げすぎてきた。日本人自身もそのことに突破口があるとは、思っていない。仏教DSMなどができないうちに新たな展望をもつべきなのである。

 



⊕ 分裂病と人類 ⊕

∃ 著者:中井久夫
∃ 発行所:財団法人 東京大学出版会
∃ 印刷所:株式会社 三陽社
∃ 製本所:新栄社製本所
⊂ 1982年2月15日

⊗ 目次情報 ⊗

∈ 第一章 分裂病と人類     
      ――予感、不安、願望思考
∈ 第二章 執着気質の歴史的背景 
      ――再建の倫理としての勤勉と工夫
∈ 第三章 西欧精神医学背景史 
∈ 注
∈ あとがき

⊗ 著者略歴 ⊗

中井久夫(なかい・ひさお)
1934年奈良県天理市生まれ。精神科医。文化功労者(2013年度)。京都大学医学部卒業後、同大学ウイルス研究所助手をへて医学博士を取得。1967年 には研究生として東京大学医学部附属病院分院精神科に所属し、助手をへて講師となる。その後、名古屋大学、神戸大学、甲南大学で教授を勤め、 2004年からは兵庫県こころのケアセンター所長。『精神科治療の覚書』(1982)『治療文化論』(1990)『記憶の肖像』(1992)ほか著書多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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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병과 인류

나카이 쿠오

도쿄대학 출판회 1982(신판 2013)

편집 : 모쿠라 히로시 / 고토 켄스케

지금은 정신 분열증이라는 이름이 된 분열병.
그 뿌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치유하는 지식을 바탕으로
서서히 쓸 수 있는 것은 나카이 쿠오 씨뿐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본서를 안내하고 싶었다.
잘 맛보고 싶다.
그 전에 '징후·기억·외상'이라는 책과
PTSD(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
조금만 접해둔다.
나머지는 모두 문명과 구미문화의 문제다.

 작년 가을, 잠시 혼란스러웠던 나카이 쿠오의 '징후·기억·외상'(미스즈 서방)을 읽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정신분열병'이라는 명칭이 새롭게 '스키조프레니아', '크레페린 브로일러 증후군', '통합 실조증' 중 어느 것인지 결정되지 않았던 시기의 나카이 쿠오 독특한 함축이 있는 문장이 집성되어 있다.
 그 전에 읽은 1998년의 '최종 강의'(미스즈 서방)에서는 '분열병 사견'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20세기까지는 계속 분열병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 다음에, 증례 분석의 문헌을 정리한 「통합 실조증」의 2권조(미스즈 서방)가 상처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징후·기억·외상'의 1권은 이들 사이의 정확히 트랜짓인 사고대역이 되어 있어, 사인, 트라우마, 메모리에 관한 폭넓은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고가 잘 추적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카이의 책은 모두 지적인 자극이 풍부하지만, 역시 매우 흥미로웠다.

본서를 간행한 당시의 나카이 쿠오(1982년경)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케네디 시대부터 레이건 시대까지 미국의 사정이 쓰여 있고, 그런가, 그런 일이었는지와 합점하는 곳이 있었으므로, 잊지 말고 그 일을 조금 써 둔다.
 정신의료가 큰 전환을 보이는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미국은 역동 정신의학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케네디는 정신과 병원의 병상을 50만 마루에서 15만 마루에 얽히는 계획을 단 3년간에 실행해 버렸다. 정신과 병원을 주저하는 대신 각지에 정신건강센터(정신보건시설)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신시설에는 그다지 환자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중 안정, 카터 부인이 세계정신보건연맹(WFMH) 총회에서 '저것은 실패했다'는 말을 했다. 환자들은 대부분 노숙자가 되어 갱에 상전을 튀는 생활보호비에 의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신건강센터는 레이건 시대에 폐지됐다. 그렇다고 정신과 병원의 수가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사립정신과 병원에는 유명할 곳에는 체스넛 롯지 등이 있지만, 이 시기에는 그 병상수도 수백층에서 50층으로 갔다. 그 때문에 롯지의 뒤의 건물은 폐허 동연이 되어, 환자가 마음대로 살고, 약만을 병동에 받으러 가게 되었다고 한다.

1963년 정신보건시설 설립을 결의하고 지역정신위생법에 서명하는 케네디 대통령

미국 메릴랜드 주 록빌에 있던 체스넛 롯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70년대에 시스템 요법부터 가정 요법까지, 마라톤 요법에서 절규 요법까지 다양한 정신 요법 시대가 왔다. 나도 그 중 하나, 시스템 요법과 가족 요법에 접근하고 있던 린 호프만의 제목만은 훌륭한 '시스템과 진화'(아사히 출판사) 등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에 있어서의 치료법이 그런 식으로 난타된 것은, 2개의 큰 문제가 새롭게 퍼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는 베트남 귀환병 문제다. 귀환병은 잔인한 살상에 휩싸였다고 미국 내에서 여러 번 보도돼 게다가 미국 사상 최초의 패전이라고 비판돼 환영받지 못했다. 귀환병은 공항에서 츠바까지 토해졌지만, 병사들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trauma 심적 외상)가 쏟아져 있었다. 이 근처의 사정은 요시다 아키오의 걸작 만화 '바나나 피쉬'(쇼가쿠칸 문고)도 벌써 그려져 있다.
 또 하나는 페미니즘이 심화해 갔다. 베티 프리던과 류스 이리갈라이 등 다양한 라디칼 페미니즘이 파생되었다. 여기에 성차별이나 강간과 가정폭력에 의한 심각한 외상문제가 부상했다.
 베트남 귀환병과 성차별 등을 둘러싼 트라우마 문제는 당시 정신의학을 선도했던 미국으로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이것이 다양한 치료법이 난타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1980년대가 되면, PTSD(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어떻게 파악할까 하는 논의와 요법이 특히 주목받게 되었다. 따라서 PTSD는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약자입니다.

베트남 귀환병을 소재로 한 영화
왼쪽 "더티 해리"(1971)
오른쪽 "택시 드라이버"(1976)

PTSD를 일으킨 대표 사례(닥터 트러스트 조사에서)

 PTSD의 이름은 1980년 DSM-Ⅲ에 처음 등장했다. 이에 따르면 PTSD에는 정신적 불안정이 불안·불면 등의 과각성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 트라우마의 원인에 해당하는 장애와 관련된 현상이나 사물을 회피하게 되어 버리는 경우, 사고의 체험이나 범죄의 목격에 관한 플래시백이 일어나는 경우 등 다양한 증상이 있다. 이른바 '괴롭힘'이 PTSD로 이어지는 일도 많아, 중대한 사건의 기억에 고민하거나, 사후적으로 기억이 재구성되어 가거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 마치 있었던 것 같은 사건의 기억이 되기도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그러한 PTSD를 둘러싼 연구에는 나름대로의 전사가 있었다고 나카이는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세기 후반부터 히스테리 연구이다. 특히 프랑스 신경학자 장지 마르탄 샤르코는 지속적인 폭력과 강간에 시달리고 있던 젊은 여성들의 증례를 연구해 히스테리는 신경증이라고 추리했다. 그와 함께 당시 철도사고 후 '철도뇌'도 치료 대상이 됐다. 거기에 PTSD의 전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두 번째 단계는 프로이트와 피에르 자네가 대항하면서 연구 접근을 한 단계에서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변성 의식(알타드 스테이트)과 히스테리 증상이 주목됐다. 두 사람 모두 유아기의 외상과 성적인 외상을 중시했지만, 쟈네는 그러한 증상을 「해리」라고 불렀고, 요제프 브로이어는 「이중의식」이라고 불렀다. 해리는 최근 영어로는 “dissociation”이 되고 있지만, 쟈네는 “désagrégation psychologique”라고 부르고 있었다.
 제3단계가 되면 제1차 세계대전이 휘말린 전쟁 외상이 환자뿐만 아니라 군대 상층부와 치료자들을 따라잡아 PTSD가 세계 규모의 사례 문제임을 조금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연구의 열은 멈췄다. 그것이 부활하는 것은 에이브람 카디너의 유명한 모노그래프 「전쟁 스트레스와 신경증」(미스즈 서방)이 1941년에 발표되고 나서였다.
 미군으로서는 전쟁 스트레스 등을 인정할 수는 없다. '올바른 전쟁'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사람과 죽은 자'(신시오 문고) 등을 제외하면 나라의 범죄에 먹어 걸리는 저술이나 연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제2차 대전 후에도 PTSD 연구가 진행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엎드려 갔던 것이다.
 그 미국의 정신의학계가 본허를 넣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 겨우 베트남 귀환병 문제로부터인 것이다. 조선전쟁에서 일반인을 학살하고 있던 것에 의한 외상이 俎상에 오르는 것은 한층 더 1999년까지 이월되었다. 이와 같이 PTSD와 비슷한 것은 계속 일어났다. 그것을 언제 사회나 의료가 “인지”했는가 뿐이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가 훨씬 광범위 해지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아프간전쟁~자폭테러~9.11이라는 식으로 돌아온 현대사의 버스트(사건의 기폭)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인류사적인 PTSD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카이는 이런 흐름을 앞두고, 여기에는 「고층의 종족적 기억이 손상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가 아닐까라고도 썼다.

19세기 말,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히스테리 환자의 치료에 해당한 프로이트(왼쪽)와 자네(오른쪽)

 그 외 『징후·기억·외상』에는 여러가지 지적과 시사가 담겨 있어 이를 읽는 나의 자기상이 또 하나 탈피되어 가는 공명을 느낀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나카이 씨의 책을 읽을 때마다 엿보는 느낌으로 온 것으로, 거기서부터는 많은 문명적인 시점이 그 끊임없이 가져왔다. 이러한 문명적인 부감력은 유감스럽다고 할까, 유감스럽다고 할까, 당시는 미셸 푸코나 나카이 씨로부터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밤의 천야천권으로 선택한 '분열병과 인류'도 바로 그런 책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생각해 보면, 나가 나카이씨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오랫동안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유」를 편집하고 있던 70년대 전반에 「풍경 구성법」이 깜짝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잘 만나지 못하고, 대신 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이이다 마코토와의 공저의 「천재의 정신병리」(중앙공론사의 자연선서)를 읽었다.
 흠, 독특한 시야로 철자되고 있다고 생각해, 당시 자주 만났던 자혜의대의 이와이 히로시 선생님에게 나카이씨를 물었다. 특히 "나카이 씨는 어렸을 때 발레리의 연구자가 될지, 아니면 의사가 될 것인가, 꽤 망설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마음에 남았고, 그 후 '분열병과 인류'를 읽었다. 때, 꽤 변한 기술의 방법이었던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매몰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발레리에 빠진 사람의 문장이라고 합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 후에 「내 일본어 잡기」(이와나미 서점)를 읽어 보고(이것도 재미있다), 나카이가 어떻게 발레리에 반했는지 잘 알았다.

2010년에 발행된 “내 일본어 잡기”(이와나미 서점)

폴 발레리(왼쪽)와 이와이 히로시(오른쪽)

 풍경 구성법(Landscape Montage Technique)에 대해서는, 특히 구분할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심리 요법으로, 롤 샤흐·테스트와 같은 침습성이 거의 없는 것, 클라이언트(환자씨)의 진행중의 심리 현황 을 편집적으로 추찰할 수 있는 것, 나카이가 거기에서 한층 더 「상호 한계 음미법」을 독자적으로 고안해, 그것이 아동 정신과 의사의 야마나카 야스히로에 의해 도널드·위니콧의 스퀴글법 등과 연계되어, 독특한 MSSM(Mutual Scribble Story Making)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등을 알았다.
 MSSM은 이야기 요법 중 하나입니다. 어린이용으로 「교대로 빙빙 그린 투영·이야기 통합법」등도 개발되고 있어 지금은 꽤 연구가 깊어진 내러티브·어프로치의 선구적 수법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나카이 쿠오가 고안한 풍경 구성법. 나무, 산, 강, 길, 집 등을 지시된 순서대로 그려 한 장의 풍경을 완성시킨다.

 그러면, 여기로부터가 본서 「분열병과 인류」의 이야기가 되지만, 상당한 중전차가 아타마 속을 다진해 온 것 같은 독후감이었던 것을 지금도 있어라고 생각해낼 수 있다. 두 가지 어려운 문제가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유럽의 정신병과 그것에 대처하는 정신의학이 도대체 어떤 배경에 의해 돌진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카이 씨가 들기 전에 집착 기질을 읽고 일본의 근세의 '수선'이라는 언동에 다가 봤다는 것이다.
 후자 쪽에는 ‘치유’가 아니라 세세한 ‘수리’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었다. 니노미야 존덕과 아카호랑사를 통해 일본인의 “근면의 정신의학”이 언급되고 있었다. 이런 관점은 일본사학적으로도 첫 시도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밤은 전자의 기술의 내용에 대해, 즉 유럽에서의 정신 의학 배경사를 부감하는 나카이씨의 “읽음”에 대해서, 나름의 “편집 읽기”를 가지고, 극히 굉장히 머크마르 안내를 해 두기로 한다. 그래도 마음껏 인류와 분열병의 밀월관계의 역사가 보일 것이다.

『니노미야 존덕 翁』(고다 노부반)의 구화보다
존덕이 장작을 짊어지면서 읽고 있는 텍스트는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쿠쿠・히라텐시」의 하치조메 등 주자학의 에센스를 쓴 『대학』이다.

 나카이가 대전제로 한 것은, 분열병은 인류가 탄생할 만큼, 우리의 심신에 달라붙게 된 증상일 것이라는 것이다. 나카이는 이 가설에 따라 "인류는 분열병적 친화성이 강한 동물이 아닐까"라고 암시한다.
 왜냐하면 사냥민의 정신은 저축형이 아니고, 아마 아직 복잡한 제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확과 깎기와 축적'을 중시하는 농경민 사회 속에서 강박적인 신경증의 전조가 시작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에는 농경의 예축을 잡는 샤먼 등이 있어, 당연히 트랜스 상태의 감염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당초부터 알코올 의존도 발병하고 있어, 심신의 밸런스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인류의 대부분이 농경사회의 발전과 함께 이러한 다양한 본질적 도착을 통해 문명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꽤 시사가 풍부한 지적이지만, 그럼 이런 견해를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가져왔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게는 되어 있지 않다. 정신의학은 근대인의 "마음의 병"의 분석에서 들어 버린 것이다. 큰 '인류의 병', '문명의 병'이라는 관점은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것이다.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은 매우 새롭다. 그것에 비해 고대 이 분 계속되어 온 「치료 문화」의 역사 쪽이 훨씬 길고, 컸다. 그렇다면 그 '치료문화' 속에서야 정신의학의 전조를 읽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고대 오리엔트 사회의 주술적 세계관과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적 세계관이다.
 고대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자기 처분 능력이 있는 자”로 여겨졌다. 지식은 항상 만능이다. 거기서 어떻게 될까라고 하면, 「알고 있다」라고 하는 상태와 「몰라」라고 하는 상태가 대치되어, 군주나 철인이나 종교인은 그것을 판단하는 전문가라고도 불렸다. 부득이 이 전문가들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노자도 공자도, 붓다도 플라톤도, 그것을 생각했다. 치국이나 생활에 딱 맞는 것을 생각하려고 한 것이다.
 한편, 좋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무법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진 셈이다. 안의 정, 이들은 “난폭자” “방해자”로 취급되었다.

 이것으로 무엇이 일어났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인의 최대의 도덕의 표명이,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기 위한 「아이도스=수치」가 된 것이다. 이것이 "레리기오"(religio)입니다. 나중에는 '합리'가 되었고, 이어서 사회적인 '정동의 기준'이 되어 갔다. 그러나 이때, 그들은 인간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대했을 것인 「불안」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대개 숨겨 버린 것이다. 불안은 아테 (ãtê 광기)로 간주되었다.
 이어지는 알카이크 시대에는 도리아인의 침입이 비참과 빈궁을 가져왔기 때문에 폴리스가 형성되지만 곧 인구 과잉이 되었기 때문에 식민·교역·전쟁에 그 해결을 요구했다. 사회의 유동성에 노출된 고대 그리스는 과연 솔론의 입법 등에 의해 이를 중재하려 했으나 결국은 인간의 무능이 통감된 것이었을 것이다.
 시민들의 코로스(koros 성공이 만드는 자기만족)는 곧 휴브리스(hybris 분노)를 낳았고, 휴브리스는 네메시스(nemesis 분노·질투)를 불렀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가. 여기서 처벌받게 된 것이 레리기오(합리)에 맞지 않는 '광기'라는 것이었다. 레리기오는 레귤레이션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 시대의 '광기'는 오늘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당시 광기로 여겨지는 것은 사회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능숙하게 도입된 것이었다고 나카이는 말한다. 글쎄, 그렇다.
 철인 플라톤은 그렇게 도입되는 '교묘한 밸런서와 같은 역할'로서의 광기의 작용을 굉장히 분류해 보였다. 즉 '예언적 광기'(아폴론), '밀의적 광기'(디오니소스), '시적 광기'(무사 뮤즈), '에로스적 광기'(아프로디티, 에로스)이다. 이것은 광기를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습관이 된 사회의 징계를 일탈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정의한 탓이었다.

왼쪽에서 아폴론(베르니니작, 동상 왼쪽)・디오니소스(카라바지오작)・아프로디티(로마 시대의 동상)

 이러한 광기의 분류와 정의는 오늘날의 정신의학이 재정하는 광기가 아니다. 플라톤의 광기의 규정은 그리스 신화적이며 고대 사회적인 치료법 그 자체였다. 이렇게 오르페우스도 피타고라스도 엠페도클레스도 이 가끔 도입된 '광기의 해설'을 치유의 보조로 하는 철학을 설교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쑤시고 '정신의 산파'를 맡으려고 한 것에도 나타난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고대 로마에 이르기까지, 「광기」는 이른바 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미지의 힘을 해설하기 위한 대항력이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이윽고 시리아 레바논 후의 동방사상과도 스키타이계의 시베리아 샤먼 문화와도 접촉해, 여기에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나 페니키아의 의신 에슈문과 같은 지하에서 솟아 나온 것 같은 치유력을 둘러싼다.
 의술은 점점 세속화되어 갔다. 꿈 판단을 하는 그룹이나 히포크라테스 학단과 같은 의료적 직업윤리를 가진 그룹도 나타났다. 이 지식은 헬레니즘기에 일단 마케도니아에 집약되어 ​​의학의 중심도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 거기서는 폴리스적인 인위적 인간상에서 일탈한 것이 신들의 치료의 대상으로 되어, 그를 위한 대도서관이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는 이상의 치료법을 「콘펜디움」(필휴하는 것)으로서 계승한다. 그렇게 되면, 병은 한편으로는 아직 신들의 하자(상처)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누구나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카탈로그인 것이다. 4세기 갈레노스 같은 대치료가들은 이 카탈로그화에 저항했다. 갈레노스는 질병이 의사에 의해 치료되어야 한다고 표명했다.
 거기에 분노와 같이 나누어 이렇게 온 것이 북동 유라시아의 훈족 등에 밀린 게르만 제족이었다. 이 '만족들'은 이미 로마 세계로 확산되고 있던 기독교를 편리한 '마음의 도구'로 하면서 다양한 이국의 신앙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이키오이, 병과 광기의 카탈로그가 부풀어진다.

 시대가 빨리 유럽 중세를 통해 중시된 것은 이번에는 '숲을 통과하는 불안'을 참가하기 위한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이다.
 9세기부터 10세기에 이르는 유럽의 황폐는 눈에 띈다. 많은 것이 오크 등의 2차 삼림에 모여,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경작지에도 늑대가 나타나 사람을 덮쳤다. 그림 동화가 그린 사회 그 자체다. 그런 가운데 기사로 존경되기 위해서는 이 무서운 숲을 달려가는 용기가 요구되었다. 그 때문에 중세에서는 기사들의 용기와 로망에 따른 불안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웅이 될 수 없는 기사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기사들의 집합적인 전승과 기록이 묶여 아서왕 전설과 로빈 후드와 니베른겐 설화 등 여러 기사도 이야기와 연애시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와 시는 기사들의 인격에 머무는 사랑에 대한 희구와 불안의 심정을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해 갔다.

영웅 지크프리트(왼쪽)의 비극적인 죽음과 아내 크림 힐트(오른쪽)의 복수극을 그린 니베른겐 설화.

 한편 중세 지중해는 이슬람 세력의 제압권이다. 그 때문에 동방세계와의 통용 루트는 노르만인에 의한 흑해를 경유하는 것만으로 좁혀졌다. 그 가운데 라틴문화가 점점 뚝 떨어졌지만, 브리타니아에서의 사건이나 베네딕트파 수도원은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카시오돌스 등이 활약해 의료문헌을 해독하거나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치료는 당연히 기독교의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었다.
 12세기 이후 유럽에 농업혁명이 일어나면 무거운 쟁기에 의한 심경농경과 목축이 통합되어 삼포농업이 보급된다. 그와 함께 삼림(2차 삼림)이 급속히 벌채되어 거기에 아라비아인의 의료문화가 흘러들었다. 거기에 동방의 남북경로가 타타르인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정이 겹치자 북방산업권은 중앙 모직물산업과의 새로운 연락로를 유일하게 라인강 등에 요구하게 되었다. 한때 라인강이 ‘승원계곡’이라고 칭해진 이유는 이러한 사정이 의료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이 이어진 13세기를 지나 이탈리아, 남부부, 라인 하반, 파리에 차례차례 대학이 성립해, 살레르노, 나폴리에서는 마침내 의학교가 탄생했다.

살레르노 의학 학교의 "외과"를 그린 그림
그리스, 라틴, 이슬람을 통해 살레르노에 설립되어 볼로냐, 나폴리, 몽펠리에 대학에서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 '숲의 불안'의 극복은 '바다의 불안'을 극복하는 선장과 승무원의 것이 되었다. 투자, 조선, 항구에서의 선출, 항해, 난파, 획득, 귀항, 가공, 판매라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새로운 부와 함께 파산의 공포와 불안을 가져왔다. 원양항해에 대한 투자를 둘러싼 일희일우가 사회에 ‘회계의 불안’을 뿌렸다.
 숲에서 바다로의 전환은 사회에서 '대금과 차변'이라는 정부하의 가치관을 낳았다. 나카이는 이 변화 속에서 '선장'(captain)이라는 절대적 리더십을 둘러싼 가치관과 앞으로 발흥하는 개신교와의 연결도 탄생해 온 것이 아닐까 보고 있다. 이것은 낯설다.
 이처럼 보면 유럽의 의료기술과 의학사상이 마치 건전하게 근대의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페스트(흑사병)의 맹위에는, 누구나가 할 일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멜른의 휘파람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쥐를 마을 밖으로 유도하려고 했지만, 매우 대책은 되지 않는다. 각지의 위생면도 심하게 지금까지 페스트뿐만 아니라 천연두와 이질과 역사도 맹위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병원균으로 인한 귀찮았습니다. 이른바 자연의 맹위였다. 문제는 "사람의 광기"의 취급 쪽이다.
 거기에 등장한 것이 유럽 안에 퍼진 마녀 사냥이나 마녀 재판이나 이단 심문이다. 이들은 매우 인위적으로 광기치료를 왜곡해 갔다.

14세기 프랑스에서 그려진 흑사병의 그림

『하메룬의 피리 피어(Pied Piper)』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채화
(13세기 중세 독일)

 마녀 사냥이나 이단 심문의 배경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걸쳐 연금술, 점성술, 마술, 카바라주의, 집단 히스테리, 독거미 리듬(독 거미 공포증) , 사바트주의 등이 우고메키, 때로는 네오플라토니즘이나 헤르메스주의의 이름을 빌리면서도, 귀족이나 지식인이나 스님의 사이에 유행해 계속했다는 사정이 있다.
 이들은 모두 수상한 요술 넘치는 경향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더 수상하고 무서운 마녀를 차례차례로 만들어 갔다. 마녀 사냥이야말로 올바른 치료라고 할 필요가 있었다. 민중들도 마녀 사냥을 지지했다. 기근이나 젖소의 대량사나 해충의 발생 등을 마녀 탓으로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는 군중의 환호에 맞아 구워져 갔다.

당시 그려진 마녀의 그림

1571년에 암스테르담에서 행해진 마녀 사냥을 그린 판화

 마녀 사냥의 유행은 광기의 본질을 그렇게 잃어버렸다. 하나는 '광기는 클렌징해야 한다'는 사회 관습을 조장시켰다. 또 하나는 마녀재판에 걸릴 정도의 사람이 아니어도 항상 이상자나 그 후보자를 ‘검역해야 한다’는 판단을 조장했다.
 이미 한센병의 병자는 고대 이 분 격리되어 왔다. 그 참상은 눈에 띄는 것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거기에 페스트의 유행이 겹쳐 허약한 한센병자가 대량으로 몰려갔다. 이 때문에 광자야말로 수용되는 대상이 되었고, 난치병과 광기는 마침내 성실한 채 격리의 대상이 되어 갔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와 '감옥의 탄생'(모두 신쵸샤)에서 말한 것은 이 역사적 실정이다.

한센병을 근절한 나라로 알려진 몰타섬에 개설된 검역소 '라자렛'(16세기)

 정신병자는 격리시설에 들어갈 뿐이 아니었다. 병자를 선원에게 얽히고 항구에서 항구로 돌려 돌리는 ‘아릉선’에 태워지기도 했다. 세바스찬 브란트의 '아릉선'(현대 사시오 신사)과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으로 유명하다. 세계의 미나토마치에 '그렇지 않은 자'나 '취한 것'이 접힌 것은 그 탓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마녀 사냥이나 광기의 수용에 반대하는 일부 지식인도 있었다. 엘라스무스, 예수회사, 개신교, 몬테뉴, 세르반테스, 계몽사상가 등이다.

 마녀사냥의 종말은 근대의학의 모아에 괴로워하고 있다. 나카이는 이것을 네덜란드를 예로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마녀 사냥이 빨리 종식한 것이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저지 국가들은 노르만의 각구가 끝난 뒤 가장 밀집한 자치도시군이 되어 북방 르네상스의 문화센터가 되어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관계를 가진 스페인 선진문화의 출점이 되고, 또한 스페인의 이단 심문에서 벗어나는 유대인의 집적지.
 게다가 네덜란드는 부르군도 왕국의 궁정 문화에서 자기 탈피를 입은 칼비니즘의 일대 거점이 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영국의 퓨리탄 혁명보다 훨씬 빨리, 칼빈파가 이민·중농층에 지지되어, 도시 문화를 자립시키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문제를 '범례'로 해결하는 범례주의가 확립되었다.
 이상의 동향이 영국의 시민혁명, 프랑스의 대혁명과 함께, 유럽에 있어서의 시민사회의 최초의 모델이 되어, 근대 정신의학의 교량이 되었다. 예를 들어 라이덴 대학이 임상 소견을 망라하는 병력 정리를 시작한 것은 이러한 선구례였다. 에든버러 대학이 근대 임상 의학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네덜란드 유학의 귀국자들 때문이었다.
 오늘날 근대정신의학의 선발자로도 불리는 토마스 시드남, 윌리엄 카렌, 필립 피넬, 빌헬름 그리징거 등은 모두 이러한 네덜란드 모델의 혜택을 살린 내과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이다.
 가운데 프랑스 왕립 식물원에서 식물 분류에 종사하고 있던 피넬이 식물학자의 소바주와 카바니스의 후계자로서 정신질환의 분류에 걸렸다. 린네의 영향이다. 큰 전진이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알고 ‘마음의 병’도 식물의 분류로 시작되었는가라는 정말 기묘한 감개를 느꼈다. 피넬을 계승한 것은 장 에티엔느 에스키롤이다.

에스키롤(왼쪽)은 프랑스 정신병 환자 처우와 교육에 힘쓰고 10곳에 보호원을 창설했다. 오른쪽은 「백치의 감금」을 그린 도판(1983년)

 
 네덜란드 모델은 당연히 영국을 향해 신대륙 미국의 퓨리탄 식민지에도 흘렀다. 그리고 당연한 일로 유럽에서 보면 시절에 놓인 '세일렘의 마녀 사냥' 등을 미국에 가져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나사니엘 호손의 '주문자'(신시오 문고·이와나미 문고)가 그린 헤스터 푸딩의 비극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카이는 만약 웨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에 부여한 영향이 있다고 한다면, 프로테스탄티즘이 정신의학에 가져온 영향도 3기로 나누어 추적된다고 간주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은 제1기는 네덜란드에서 칼비니즘의 윤리와 노동치료가 가까워진 시기로, 직업윤리에 근거한 의사들이 근면하게 수용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회진」이라는 말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제2기는 산업혁명과 함께 공장사회에 지배와 생산과 노동이 균일화된 이후로 여기에는 '공장'과 함께 아담 스미스 이후의 '시장'이 관련되어 온다. 거기에 개신교와 정신의료감각이 겹쳤다. 초기 자본주의에는 영국의 커먼 로와 로우 오브 에퀴티의 상호 보완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은 경영층에 산업을 촉진하는 것은 사회 요법이기도 한다는 환상을 안겼다.
 제3기는 개신교, 산업혁명, 자본주의에 더하여 이들에 사회개량주의, 산업사회주의, 조합주의, 민주주의가 섞여서 21세기의 현대에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정신질환은 '일하는 현장'의 확장에 따라 퍼져 나간 것이다.

 앞으로 나카이는 정신과 병원이라는 것이 탄생해 온 배경, 대학에 정신 의학의 영역이 확립해 온 배경, 또한 유럽에서의 역동 정신 의학의 계보와 정통 정신 의학의 계보 가 분파해 가는 배경, 프로작 등의 향정신약이 “맹위”를 체험하게 된 배경 등도 독특하게 스케치하고 있지만, 오늘 밤은 그들을 커버하는 것은 삼가해 둔다.
 그러나 나카이가 이 『분열병과 인류』의 끝에 무엇을 쓰고 있었는가는, 꼭 강조해 두고 싶다. 나카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썼다.

역동 정신의학 성립의 흐름

정통 정신의학 성립의 흐름

역동정신의학과 정통정신의학의 비교

 유럽에서 '신 하나님 시대'의 만연과 정신의학의 확산은 아마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퓨리타니즘이 '아버지 하나님'을 경시한 것과 자본주의가 개신교주의 근면을 중시한 것이 어딘가에서 '마음의 병'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것들은 무엇에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고 하면, 그것은 오토크리틱(자기 비판)에 주름을 가져왔다.
 한편, 많은 난치병이 20세기가 되어 치료 가능하게 되어 온 것은, 질병을 자주 '정신'으로 쫓은 것과 무연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결핵은 페니실린에 의해 약독화시킨 것이지만, 그 만큼 결핵은 정신병이 되어도 갔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이 정신병을 발견하고 그 분류와 치료에 약기가 된 것은 세계사 전체에서 보면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다.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으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나 회사를 지키려고 하면, 사회나 회사에 「우울증」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나카이는 덧붙인다. 이들에 대해 대승불교 등이 '자립'과 '중관'을 함께 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구미적인 것과는 상당히 다른 문명이나 사회에 있어서의 가치관의 가능성을 가져왔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아시아도 일본도, 지금도 세계에 대해 설득력을 가지고 발신하고 있지 않다. 특히 근대 불교는 '광기'나 '이상'에서 너무 도망쳐 왔다. 일본인 자신도 그것에 돌파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 DSM 등을 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전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분열병과 인류 ⊕

∃ 저자:나카이 쿠오
∃ 발행소:재단법인 도쿄대학 출판회
∃ 인쇄소:주식회사 산요사
∃ 제본소:신에이샤 제본소
⊂

⊗ 목차 정보 ⊗

∈ 제1장 분열병과 인류     
      ――예감, 불안, 욕망 사고
∈ 제2장 집착 기질의 역사적 배경 
      ――재건의 윤리로서의 근면과 궁리
∈ 제3장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 
∈
주∈

⊗ 저자 약력 ⊗

나카이 쿠오(나카이·히사오)
1934년 나라현 텐리시 출생. 정신과 의사. 문화공로자(2013년도). 교토대학 의학부 졸업 후, 이 대학 바이러스 연구소 조수를 통해 의학 박사를 취득. 1967년에는 연구생으로서 도쿄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분원정신과에 소속되어 조수를 통해 강사가 된다. 그 후, 나고야 대학, 고베 대학, 고난 대학에서 교수를 근무, 2004년부터는 효고현 마음의 케어 센터 소장. 「정신과 치료의 각서」(1982) 「치료 문화론」(1990) 「기억의 초상」(1992) 외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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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대편2014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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