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똥꽃’ 자리 이젠 웃음꽃 피네
한승동기자수정 2019-10-19
집 마루에 걸터앉아 담소하는 두 사람〈똥꽃〉
전희식·김정임 지음/그물코·1만2000원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는 치유될 수 있을까?
하지만 〈똥꽃〉은 치매가 “굴절된 삶의 현재적 표현”이자 “필요한 현상이고 (그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심지어 “생활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면 병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한다. 그리고 “노인들의 치매가 병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현대를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병자”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따라서 어머니의 치매와 싸운 〈똥꽃〉 얘기는 특정 치매환자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진지한 실험에 관한 현장 보고서일 수 있다.
전씨. 그물코 제공“해발 620미터인 이곳에 처음으로 진달래가 핀 날, 어머니 새참 드리는 것도 잊고 어둑발이 질 때야 집에 돌아왔다. …마루에는 똥이 묻은 아래위 겉옷과 속옷이 쌓여 있었고 방안에도 어머니가 움직이신 길을 따라 똥칠이 되어 있었다. 똥을 눈 지 오래되었는지 작은 똥덩어리는 딱딱하게 말라붙었고 손이나 발에도 똥칠갑이었다. 어머니는 불도 켜지 않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내가 왔지만 돌아보지도 않은 채 돌부처처럼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 그것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열혈 노동운동가였던 전희식(50)씨. 10여년 전 자연농업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로 인생 진로를 수정하고 ‘귀농’했던 그는 3년 전 서울 큰형 집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단독주택 3층 두 평 남짓한 외딴방에서 기저귀를 찬 채 밥과 약을 받아먹으며 두문불출하던 어머니는 막내인 그에게 “오줌 누는 데가 따갑다”며 하소연했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일부러 찾아뵌 적이 없었고,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할 때나 형 집에 들른 김에 어머니께 인사드리는 정도였다. 한번 얘기를 꺼내면 끝이 없고 냄새가 진동하는 어머니 방에 누구도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10년 전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고관절이 바스러져 철심을 넣은 뒤 아랫도리를 쓰지 못했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됐다. 누워 지내면서 치매가 진행됐다. 작은형이 식사 때마다 어머니 틀니를 칫솔로 닦을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해 고개를 돌리곤 했던 그였으나 그날 벌겋게 짓무른 어머니 아랫도리와 하얗게 세버린 체모를 보고 울었다.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마음먹었다.”
2006년 봄 식구들이 사는 전북 완주에서 멀리 떨어진 장수군 산촌의 다 쓰러져 가는 외딴 빈집을 구해 반년 가까이 수리를 한 뒤에야 식구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했다. 그해 9월 홀로 이사를 했고 2007년 2월에는 마침내 어머니를 모셔 왔다.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남 함양 출신인 어머니는 14살 때 시집와서 6남매를 눈물로 키웠다. 아버지가 43살에 돌아가신 뒤의 모진 과부살이였다.
〈똥꽃〉어머니와 살면서 전씨가 가장 신경 쓴 것 중의 하나는 똥오줌 가리기였다. 먼저 화장실을 어머니가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고 음식 섭취와 배뇨시간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관찰한 뒤, 때 맞춰 변기를 갖다 드렸다. 기저귀를 없앤 것이다.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애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인하는 과정”으로, 거기서 수치감을 느끼면 심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두 달 이상 노력한 끝에 어머니는 배뇨감각을 회복하고 몸을 끌고 가 뒷문 쪽 전용 뒷간을 이용하게 됐다.
방에 온통 똥칠갑을 한 사건은 그 와중에 일어났지만 전씨는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하고 노래했다.
전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존엄’, “건강보다도 존엄”이었다. 어머니에겐 반드시 존댓말을 썼고 집을 드나들 때는 절을 올렸으며, 집안 대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일이 알려드리고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를 관리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주체,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에 앞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 얘기를 한결같이 비웃거나 개탄하며 무시하거나 그게 아니라며 교정해주려 애썼다. “어머니는 좌절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언제나 부정당하는 자신마저도 포기했다. 나는 바로 이게 치매라고 생각한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 치매다.”
눈 내리는 광경을 10여년 만에 보고 놀라던 어머니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씨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생산적인 작업, 예컨대 청국장 만들기, 가죽자반 담기, 배추 심기, 쑥 뜯기 등을 어머니가 주도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궁이 불도 지폈다. 양말과 바지를 몰래 찢어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부탁하고 나무쌓기 놀이를 유도했다. 믿음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들의 말은 용케도 잘 알아들었다. 모내기, 마을회관 가기, 사찰 행사 참가, 고향 나들이, 기도회 개최 등 아들은 어머니가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어머니가 나랑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맘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것, 떵떵거리고 사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요즘 나 밥값 하제?”로 발전하더니 10년 만에 수제비를 끓여 아들 밥상을 차렸다. 먼저 그가 변하고 어머니가 변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바뀌고 주변이 함께 바뀌기 시작했다.
전씨는 〈똥꽃〉을 두고 “치매를 소재로 삼긴 했지만 주제는 세상과의 관계,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보자는 것”이라며, “외형이나 현상만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말고 (어머니의 86년 세월처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곡절과 내력을 읽고 이해하는 것, 그렇게 해서 소통하기 시작하면 뜻밖의 기적도 일어난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김정임 (지은이)그물코200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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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쪽
책소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의 실재 이야기. 늙고 병든 노인이 관리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로 내려가 부모의 존엄과 나아가 자신의 존재 근원을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도시에서는 방안에 있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어, 늙고 병들어 이젠 쓸모 없어졌나 자책해오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자 적극적이 되고 밝아진다. 치매를 86년을 살아오신 어머니 삶의 고단함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 치매가 병이 아닌 치유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목차
추천의 글
서문
3년 전, 예정된 우연을 만나다
고물로 어머니 모실 궁궐을 짓다
어머니가 거신 전화
내리는 눈을 만지며 "세상 많이 좋아졌네"
나시래이 안 뜯어오고 웬 발금다지냐?
"어머니는 똥대장"
필사적으로 부엌 문턱을 넘으신 어머니
눈부시게 발전한 내 밥 짓는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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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많은데 왜 노화는 없을까? -어머니 읽을거리를 직접 만들다
어머니와 양지바른 마루에 앉아
발문
책속에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못지않게 어머니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시도한 것이 청국장 만들기였다. 하룻밤 콩을 물에 불려 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더니 '됐다!'고 하시면서 '솥에 넣고 삶아라'가 아니라 '가자, 가서 삶자'고 하셨다.
어머니 신발을 신겨 드리고 마루에서 부엌으로 가는 흙바닥에 방수포를 깔았다. 어머니가 거침없이 마루 아래로 내려앉았다. 땅에 몸을 끌면서 앉은 채 부엌으로 가다가 문턱에 걸렸다. 한쪽 무릎을 문턱에 걸치고는 윗몸 무게를 앞쪽으로 왈칵 쏠리게 하면서 한쪽 엉덩이를 문턱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어머니는 다리 못 쓴다는 핑계로 앉은 채 물 떠 와라, 콩 삶겼는지 한 숟갈만 퍼 봐라, 안 눋게 주걱으로 휘휘 저어라, 빨래는 다 했느냐며 온갖 집안일을 챙기고 나섰다.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장작을 너무 잘게 패서 불땀이 없다고 야단을 쳤다. 저러다 또 한 건 하지 싶어서 분위기도 바꿀 겸 내가 한마디 했다.
'어무이, 오줌 눌 때 안 됐어요? 오줌 좀 누러 가입시다.'
'오줌? 여따 눠 삐리지 뭐.'
'예?'
'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
'안 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기 힘들어요!'
'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우리 모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전희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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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남 함양의 황석산 아래 동네에서 태어났다. 도시에 살다가 1994년에 전라북도 완주로 귀농했다. 2006년에 장수로 가서 치매 있는 어머니를 모셨다. 자연 농사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 만물과 소통하는 삶을 추구하며 산다.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정령과 파동에너지에 민감하다.
만 8년을 같이 산 어머니가 빛이 되어 하늘나라로 가신 지 7년이 되었다. “내가 죽어서도 너 하나만큼은 잘 되고로 해 주끼마.”라고 한 어머니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나날을 보낸다.
독일, 뉴질랜드, 북유럽, 남미, 인도, 대만, 일본 등의 공동체를 두루 다녔고 공감과 회복의 치유 수련을 지도하며 산다. 『소농은 혁명이다』(모시는 사람들, 2016), 『마음 농사 짓기』(모시는 사람들, 2019), 『습관 된 나를 넘어』(피플파워, 2022) 등 2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접기
최근작 : <똥꽃>,<밥은 하늘입니다>,<습관 된 나를 넘어> … 총 23종 (모두보기)
김정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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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경남 함양 서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서당 훈장이신 아버지 밑에서 대여섯 살 때부터 구운몽, 사씨남정기, 춘향전 등 한글 고전들을 읽으며 자랐다. 삶의 막바지 8년을 막내아들과 산골에서 자연치유의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타고 난 이야기꾼으로 바른 소리를 잘해서 젊을 때 별명이 ‘신문 기자’였다고 한다. 지금도 하루걸러 아들의 꿈에 나타나시면서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엮어 가신다. 그 꿈은 아들이 운영하는 ‘(천지)부모를 모시는 사람들’ 카페에 오르고 있다. ‘천지부모’는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경전 이름이다.
이 책의 모든 소재를 제공하셨고 질박한 경상도 지방어로 책의 줄거리를 엮었다. 접기
최근작 : <똥꽃>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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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벼의 일 년: 한 알의 볍씨가 쌀이 되기까지>,<똥꽃>,<마을만들기 길라잡이 : 제도편>등 총 57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4위 (브랜드 지수 33,95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2006년 노인인구 460만명, 전 인구대비 9.5%)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성 치매도 늘어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8.3%(약 36만명)가 치매를 앓고 있고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인데, 그 이유는 본인이 겪는 아픔보다 옆에서 수발을 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치매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흔히 치매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이 이 책에서는 근본적으로 뒤집어진다. 어머니는 20년 가까이 지내던 아파트를 벗어나 아들 전희식씨가 빈집을 구해 1년 넘게 고물로 고쳐지은 산골짜기 허름한 집에서 사시사철 계절을 몸으로 느끼며 지내신다.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32쪽)
“아이가! 저기 눈 아이가? 눈이 다 내리네. 이기 몇 년 마이고.”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놀라는 어머니 모습이 더 놀라웠던 나는 신문지에 눈을 받아 방으로 들어왔다.
“눈 맞아요. 이기 눈인 기라요.”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 손에 눈을 털어 놓았다.
“그래, 눈 맞네. 세상 참 좋아졌네. 눈 내리는 것도 다 볼 수 있고.”
눈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것이 세상 좋아진 것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여러 해를 햇볕 한 줄기 들어오지 않고 잿빛 하늘을 손바닥만한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도시의 방안에서 형광등 불빛만 의지해 사셨던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42쪽)
어머니를 모시기로 작정하고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기저귀 없이 생활하는 것이었다. 기저귀는 3년 전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기로 작정한 결정적인 계기기도 했다. 3년 전에 나는 늘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워 놓는 것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애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인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노출되지 않은 개인의 수치와는 달리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 인정되어 버리면 심리 상태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두 달 이상 거치면서 어머니의 배뇨감각이 회복된 것은 물론 당신 스스로 안방 뒷문을 열고 나가서 내가 특별히 고안해 만든 어머니 전용 뒷간에서 똥오줌을 보실 수 있게 되었다.
(145~146쪽)
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신 어머니는 예전 같으면 늘 방안에 앉아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괴로우셨겠지만 시골집에 오셔서는 그럴 시간이 없다. 전희식씨가 그럴 틈을 만들지 않는다.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끌고 마당에 나와 텃밭에 물을 주고, 필사적으로 부엌 문턱을 넘어 아궁이불을 지피기도 하신다. 어릴 적 먹던 가죽자반을 만들고 20년만에 수제비를 만들어 자식 밥상을 차려주셨다. 늙고 병든 노인들이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한없이 위축되지만, 전희식씨는 어머니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드린다. 어머니는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예전의 기억들이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한다.
전희식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신 어머니에게 그만의 방법으로 현실감각을 되찾아드린다. 일부러 양말에 구멍을 내 어머니에게 슬쩍 내밀면 어머니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바느질에 집중하신다. 전희식씨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할 때 끼어드는 것이 망상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백기를 들어버린 치매는 이 책에서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일 뿐이다. 86년을 살아오신 어머니 삶의 고단함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늘의 이치에 귀 기울일 때, 치매는 병이 아니라 치유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전희식씨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3년 여 동안 수많은 관련 책과 자료, 노인병원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얻게 된 것이다. 10년 전 귀농을 하면서 생태적인 삶에 눈을 뜨고 모심과 돌봄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현대의학은 치매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선언했다. 완치는 없고 진행을 완화시키는 약이 있을 뿐이라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대뇌피질 속에 쌓이는 특수한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세포를 파괴하는 데 따른 기억 손실과 분별력 상실이 치매 증상이라는 진단은 일찍이 했지만 손상된 세포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베타아밀로이드가 왜 과잉되어 도리어 세포를 공격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의 치매 원인도 알고 처방도 알고 돌보는 방법도 알았다.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거기서 삶의 이치와 하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99쪽)
전희식씨는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동화나 옛이야기를 찾아서 읽어 드리다 정작 노인들이 읽을 만한 책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은 것들’이 봐야 할 효도를 주제로 한 이야기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도 어머니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전희식씨는 직접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노화老話’이다. 노인을 소재로 하거나 노인문제를 다룬 책들은 있지만, 노인이 읽을 만한 이야깃감으로 만들어진 책은 거의 드문 현실에서 ‘노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된 것이다. 노화는 어머니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한 편 두 편 노화가 만들어지면서 어머니의 기억들이 또렷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동화를 쓰기로 했다. 아니 노화를 쓰기로 했다. ‘젊은 것들’보는 책이 아니라 ‘늙으신 분들’ 보는 책 말이다.
적당한 동화책 이야기를 뼈대로 삼아 어머니의 옛 생활과 연결시키고 어머니의 한결같은 소원인 ‘벌떡 일어나 남들처럼 돌아댕기는’ 이야기를 곁들여 만들었다. 옷에 똥오줌 싸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만들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가가 있듯이 치매부모 돌보는 ‘효도휴가’라는 제도도 만들어 이야기 속에 넣었다.
(218쪽)
어머니를 모시면서 전희식씨 가슴에 가장 깊게 자리잡은 것은 바로 ‘존엄’이다. 늙고 병든 노인은 인간이라기보다는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저지르는 무례와 무시는 바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전희식씨는 어머니에게 절대 반말을 쓰지 않는다.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는 언제나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무슨 일이든 어머니에게 먼저 알리고 한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결코 흘려듣는 법이 없다.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된 것도 어머니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로부터 되살려지는 기억들을 통해 오히려 전희식씨가 새로 배우고 깨닫는 것이 더 많았다. 자연치유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를 모신 아들에게도 가닿은 것이다. 일하러 나갔다 온 사이 혼자 뒷간에 못 가시고 방에 누신 어머니 똥이 꽃으로 보이는 놀라운 치유의 힘.
똥꽃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
방바닥 여기저기
이불 두 채에
고스란히 담겼네.
어릴 적 내 봄날은
보리밭 밀밭에서
구릿한 수황냄새로 풍겨났지.
어머니 창창하시던 그 시절 그때처럼
고색창연한 봄날이 방안에 가득 찼네.
진달래꽃
몇 잎 따다
깔아 놓아야지.
이 책의 모든 소재들을 제공하고 이야기 줄기를 엮은 어머니가 공동저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 관계 맺기, 치매에 대한 새로운 접근, 치유와 생명의 존엄, 여성성의 발견, 노인문학에 대한 창조적 접근…. 전희식 씨는 이러한 내용들을 전문가처럼 어깨 힘주고 어렵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어머니와 일상 삶에서 주거니 받거니, 울고 웃으며 겪은 일들을 친근하게 풀어간다. 그러니 독자는 편하게 읽을 수 있되 읽을수록 삶의 속살을 되새김질하게 해 준다. -발문 중에서
자식이 없는 삶은 가능하지만 부모가 없는 삶은 없다. 이 책은 치매라는 병을 넘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전희식씨의 어머니를 넘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을 깨닫게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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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네요.
yie1841 2008-03-28 공감 (1) 댓글 (0)
마이리뷰
노인의 '존엄성'은 효자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똥꽃>(그물코)을 읽었다. 그전에, 얼마 전 <인간극장>에서 방영한 저자의 여든 노모 모시는 광경을 본적이 있다. 여든 중반의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지 아니 21세기에도 저런 효자가 있을 수 있는지 놀라웠다. 한량으로 살다가 8남매와 빚을 남기고 일찍 돌아간 남편을 대신해 평생 일에 묻혀 사시다가 그 자식들 다 크고 저마다 살길 찾자 이제는 몸도 늙고 치매도 오고.....공동 저자인 김정임 할머니의 고단한 여든 중반 평생에는 그 나이 대 할머니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 더보기
폭설 2008-04-01 공감(8) 댓글(2)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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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똥꽃 을 읽고
제목 : 똥꽃-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2088
저자 : 전희식, 김정임
출판 : 그물코
작성 : 2009.10.21.
“나에게는 아직 철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즉흥 감상-
우선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저는 2급 정사서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공무원 시험을 따로 보아야만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데 알아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일단 넘기고, ‘인턴’이라 적혀있는 명찰을 달고 ‘계약직’으로 도서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수’인 편인데요. 아무튼, 여느 날과 같이 무엇인가 신난다는 기분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던 저에게 느낌의 화살을 거침없이 꼽아버린 책이 한 권 있었다는 것으로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음~ 하지만 어떤 흐름을 지닌 이야기책이 아니었기에 진행과정에 따른 내용의 요약에는 무리가 있겠는데요. 그래도 나름대로 적어보면, 노인성 치매로 고생 중이신 할머니 한분과 그런 그녀를 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귀농생활과 더불어 자연치유의 방법에 적극적인 그녀의 아들이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기록들이 하나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제목인 ‘똥꽃’마냥 소박하면서도 자연의 구수한 향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 조심스러우면서도 다부진 마음으로 추천장을 내밀어볼까 하는군요.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각자의 어머니를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계신가요? 무한의 잔소리장이? 모든 일의 해결사? 네?! 다리 밑에서 자신을 주워주신, 분명 친엄마는 아니라구요? 으흠. 아무튼, 개인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어머니는 날이 가면 갈수록 어떤 일에 대한 명확성이 약해지시며, 어떠한 결정사항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주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삶의 진리와 성찰로 설명하시는 동시에, 어머니 또한 한명의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생활의 실수들을 통해 증명하시느라 바쁘시며, 특히 맏이인 저를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노력하시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시는 길을 걷도록 조율하시는데 혼심의 힘을 쓰고 계신다 판단중인데요. 물론, 이밖에도 은근히 흉에 가까운 평가를 적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정말 불효자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었구나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자나 깨나 자식걱정일 뿐인 어머니께 너무 과잉보호 하시는 것 아니냐고 난리를 피운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차마 이때까지 배운 것이 있다고 반말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모든 질문에 기계적으로 네, 아니오를 일관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해 볼 수 있었는데요. 으흠. 즉흥 감상에 적은 것 마냥 철분 함유량이 높은 음식을 많이 섭취(?)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똥꽃. 사실, 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만해도 ‘똥’과 관련된 동화를 먼저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요즘 동화들은 전부 똥 판인가?’라는 농담을 들었었다보니 일순간 주춤하기도 했었는데요. 저자의 소개 글과 책장 사이사이로 함께하고 있는 정겹고도 그리운 사진들을 마주함에 있어 만남의 시간을 결심할 수 있었으며, 잔잔한 감동의 시간 또한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비군 훈련으로 2박 3일의 동원에 참가하여 읽으면서는 군 생활 중으로 찾아다녔던 치매노인 분들이 떠올라,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치매노인과 사회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시선과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현재는 과거와 미래 속에서 숨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물론이요 나또한 그들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이 세상이 좋아지는 방법을 열심히 궁리해봐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안의 광기를 즐거움으로 포장해 미친 듯이 달려보고는 있다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를 함께하고 있는 것 일까나요? 남이 걸어가지 않는 길을 걸어 나간다는 부분에서 ‘개척정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적당한 말을 찾는 중에 있습니다만, 해야만 한다기보다는 미친 듯이 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렇기에 이 세상에 웃음꽃을 피워 보이고 싶다는 것으로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군요.
TEXT No. 1050
[CAFE A.ZaMoNe]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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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오타 2009-10-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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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 - 김정임/전희식
똥꽃 살다보면 문득 아, 하고 탄성을 지를 때가 있다. 어떤 장면이기도 하고 어떤 소리이기도 하며 어떤 느낌이기도 한 때. 이 저자가 맞이한 그 '때'는 하얗게 센 어머니의 체모를 보았을 때였다. 사람의 털이 저렇게 하얗게 셀 수도 있는 거구나. 이것이 시간이구나. 시간은 정직하다, 라는 말을 알고 있다.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 하고 문득 생각할 때가 있다. 쓸 데 없는 일을 하며 한참을 보내다가 문득 시계를 보았을 때, 내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그 어떤 경고도 없이 정직하게 흘러가버린 시간의 자취를 보는 것에서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우기 마련이다. 한 치의 미련도 보이지 않는 정직함. 저자는 아마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흘러가버린 시간의 자취. 이 책은 그런 현실에 절망하기 보다는, 그런 과거를 조금이라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의 일대기이다. 무엇보다도 이 저자가 이 책 내내 강조하는 것은 '존중' 이다. 그것은 사람 자체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지만 이 사회에 있는 약자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느껴진다. 그냥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도, 그냥 노인도 우리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약자이다. 그들이 평범하고 젊었을 시절에는 그들도 이 세상의 강자였고 그들 나름의 특기와 장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치매 걸린 노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부정적이고 잔인할 것인가.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짐, 혹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들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들 역시 누군가의 혹이나 짐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인간으로서 대해주는 것이 그들을 다루는 가장 올바른 행위이며 그들과 공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이라는 것이 저자가 알아낸 방법이다. 저자는 어머니가 스스로 얼마나 힘들다고 느낄지, 얼마나 답답하다고 느낄지, 얼마나 남에 대해 불신감을 느낄 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나이를 먹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몸과 정신이 불편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배타적이고 위축되기 쉽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배려하는 것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더 나은 방법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몸소 실천하고 가르쳐 주고 있다. 책 내용을 보자. 저자는 어머니를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돌보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에게 요구한다. 어머니, 몸이 안 좋으니 부황 좀 떠주세요. 어머니 수제비 좀 끓여주세요. 자신이 늙었고 병이 들었고 이제는 뒤에 서서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할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의미가 있으며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고 깨닫게 해주는 것은 그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본다.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든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것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존중이고 존재에 대한 존엄성이라는 것을 이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개최한 '어머니의 건강과 존엄을 생각하는 기도잔치'는 그런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야 말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단순히 자식과 부모를 넘어서서,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사람이 더 못한 사람을 보듬을 때 세상의 불행은 이 전보다 훨씬 줄어들고 살기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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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 2011-09-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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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늙은이, 딸아들과 어버이는 한몸
이 책 하나 66 ― 어린이와 늙은이, 딸아들과 어버이는 한몸
: 전희식과 김정임, 《똥꽃》
- 책이름 : 똥꽃,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 글 : 전희식, 김정임
- 펴낸곳 : 그물코 (2008.3.5.)
- 책값 : 12000원
(1) 할배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
인천에 있는 ㅈ대학교 사진학과 ㅂ교수님과 낮밥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사진학과 교수님은 도서관장 일도 맡고 있어 본관에서 뵙기로 했기에, 본관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어디에다 잠가 놓으면 좋을지를 헤아립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ㅂ교수님한테 손전화를 거는데, 학교문에서 지켜서는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거, 어디 가려고 왔어요?” 하고 묻습니다. 뻔히 이 대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온 사람보고 이렇게 묻다니, 아마 제가 양복을 차려입고 까만 자가용을 끌고 왔다면 이런 말투나 말이 나오지 않았겠다고 느낍니다. “여기(ㅈ대학교) 왔어요.” 하고 짧게 끊습니다. 그러니 더 묻지 않습니다. 차 댄 자리 끄트머리에 자전거를 댈까 하다가,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자리가 도둑 안 맞는 자리임을 생각하며, 본관 들머리 옆으로 길게 나무를 심어 놓은 한켠에 자전거를 묶습니다. 이리로는 걸어다닐 사람이 없어 걸리적거리지 않고, 저로서도 볼일 마치고 나오면 곧바로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문 지킴이는 다시 다가와 “자전거 거기 세우면 안 돼요.” 하고 가로막습니다. “여기 세우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거기 세우면 안 돼요. 거기 세우면 다른 사람도 오토바이 거기다 세워 놔.” “여긴 사람들 다니지 않는 자리인데 여기 세우면 안 될 까닭이 있습니까?” “안 되니까 저기 구석으로 갖다 놔요.”
방송국에 가도 신문사에 가도, 또 어느 건물에 볼일을 보러 가도, 건물 지킴이는 자전거꾼한테 푸대접입니다. 때때로 반말을 놓기도 하고 멱살잡이라도 할 듯 우락부락거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워낙 자주 겪어 보았고, 어느 규칙이나 교칙이나 회칙에도 ‘건물 앞 빈터에 자전거 세우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라, “이거 손대지 마세요. 손대면 신고합니다.” 한 마디로 으름장을 놓고 건물로 들어갑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한테 으름장을 놓아야 하니 마음 한켠이 켕기지만, 자전거꾼 권리를 생각한다면 물러설 수 없게 됩니다. 전철을 탈 때에도 이런 일이 흔한데, 나이를 제법 잡수신 분들은 자전거꾼을 밉보거나 뱀눈으로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자리를 느낄 때마다, 왜 이분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얕은 우물에 가두려고 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마땅히 타니까,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 자동차 세울 자리는 있어도 자전거 세울 자리란 없습니다. 그러면 자전거를 걱정없이 알뜰히 세워 놓을 자리를 찾아볼 노릇이건만, ‘비싼돈 들여 멋들어지게 지은 건물 옆에 자전거가 비죽이 서 있으면 보기 나쁘다’는 말로 자전거를 못살게 굽니다.
.. 어머니 목소리가 바뀌는가 싶더니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젤 불쌍항 기 너라. 묵을 끼 남아 있어도 묵으락꼬 안 카믄 묵을 줄도 모르고, 형들 안 묵었닥꼬 냉가두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누르스름한 조끼를 입었다. 등짝이 넓적한 게 보기 좋다며 어머님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좋아하셨다.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태우지 말고 니가 입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머락카믄 그래야. 우리 어무이 생각나서 어무이 옷 입는닥꼬.” .. (224∼225쪽)
퍽 예전 일인데, 아버지가 모는 차를 얻어타고 아버지 살던 동네를 달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었음에도,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 앞에서 빵빵거리며 욕을 몇 마디 하시곤 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교사 된 아버지가 이렇게 하실 수 있나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라, “아버지, 조금 기다렸다가 가도 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빵빵거리면 놀라잖아요?” 하고 여쭙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더 빵빵거리지 않으시지만, 다음에 또 얻어탈 때 보면 또 그 빵빵거림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자동차를 몰게 되는 분들은 교육자이건 아니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길에서 차 앞에서 얼쩡거리는 무엇’이라도 있으면 짜증스러워서 이내 빵빵질을 하게 되지 않느냐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차를 몰 때만이 아니라, 여느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 돌아오는 길에 봉투랑 선물들을 가리키며 내가 “우리 어머니 부자가 되셨다”고 부러워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날라 댕긴다 칸들 누가 나보고 이런 걸 주건노. 다 니 얼굴 보고 중기지.” 공덕을 나에게 돌리고 사리를 분별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아침과 비교하면 거짓말 같았다. 절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머니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음식뿐 아니라 마실 물까지 챙겨다 주며 곁에 와서 일부러 말을 걸면서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시는 것에 어머니의 긴장과 경계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정성스런 모심’이 백 가지 약보다 나았다 .. (84쪽)
자전거한테 빵빵거리는 자동차, 건물 벽에 자전거를 바짝 붙인다고 하여도 ‘건물 보기 흉해진다’며 손사래치며 자전거를 발로 툭툭 차는 늙수그레한 건물 지킴이들한테 때때로 묻고 싶어지곤 합니다. 아니, 앞으로는 물어 볼 생각입니다. 늙어 허리 굽은 할매 할배가 엉금엉금 기듯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에도 그처럼 빵빵거리거나 얼른 비키라고 소리를 치실는지를. 당신님들은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저 할매 할배와 같은 나이가 될 텐데, 그때 당신님들한테도 그렇게 못살게 굴면 느낌이 어떠하실는지를.
힘여린 이를 아낄 줄 알고, 힘없는 이를 보듬을 줄 알며, 힘앗긴 이를 사랑할 줄 알아야 참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아끼고 어린이를 보듬으며 할매 할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들은 바른 사람으로 우뚝 서면서 이 땅 이 겨레와 어깨동무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계남면에서 장수읍으로 넘어가는 국도를 따라 ‘에프티에이FTA 결사반대’라는 장수군 농민회의 노란 깃발이 죽 꽂혀 있는 걸 보셨다. “저거는 먹꼬? 새 쫓을락꼬 꼬자 난나?”라고 하셔서 글자를 읽어 보라고 했더니 바람에 펄럭거려서 잘 못 읽으신다. 읽는다 해도 영어를 모르니 ‘결사반대’만 읽으셨을 것이다. 노인들만 있고 문맹자도 만만찮은 시골길에 농민회에서 만든 영어로 쓰인 ‘FTA’라는 남의 나라 말 깃발이 참 낯설어 보였다 .. (81쪽)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곧잘 큰 찻길로 접어들어 달리다 보면 거슬러 달리는 할배 자전거를 드문드문 마주칩니다. 무척 아슬아슬한 노릇인데, 할배 자전거가 ‘역주행’을 몰라서 이리 하실 수 있는 한편, 지난날에는 역주행이고 순주행이고 없이 ‘길에서는 자전거가 가고픈 대로 달렸다’는 생각으로 그리 달리시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날이라고 해 보아야, 인천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신호등이 놓인 때는 고작 마흔 해밖에 안 되었으며, 마흔 해 앞서 신호등이 놓였을 때에도 북적이는 곳에 한두 곳만 놓였을 뿐, 어디에서도 신호등이란 없이 사람과 자전거가 마음껏 오갔습니다. 이런 지난날 삶자락이 몸에 밴 할배 자전거는 찻길에서 스스럼없이 ‘거슬러 달리기’를 하십니다. 그래, 이런 할배 자전거질을 몰랐을 때에는 “할아버지! 그렇게 달리면 위험해요!”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제는 소리를 치지 않습니다. 뒷거울로 뒤에 차가 있는가 살피며, 제가 찻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며 할배 자전거가 느긋하게 지나가도록 뒷차를 막아서 빠르기를 늦추도록 하고 왼손을 들어 줍니다.
.. “어무이, 오줌 눌 때 안 됐어요? 오줌 좀 누러 가입시다.” “오줌? 여따 눠 삐리지 뭐.” “예?” “불도 따끈따끈해서 싸도 잘 마르겠네, 하하하하.” “안 돼요. 여따 누면 안 돼요! 옷 빨기 힘들어요!” “옷 빨드래도 내가 빠나 니가 빨지!” .. (59쪽)
할배들한테, 또 아이들한테, 자전거를 걱정없이 몸 튼튼히 지키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자동차한테서 당신들 몸을 지키는’ 자전거질만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자동차 모는 사람이 먼저 ‘자전거 타는 사람’을 눈여겨볼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줄 때에는 길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한테 어떻게 얼마나 마음쓸 줄 아는가를 돌아보면서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골목을 걷는 할배 할매와 어린이 앞에서 어떻게 차를 모느냐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면허를 주든 말든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르신을 모실 줄 알자면 어린이를 받들 줄 알아야 하고, 어린이를 받들 줄 알자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한테는 우리 스스로 사람됨을 잃어 가는 가르침과 사람됨을 내다버리는 돈벌이만 판치고 있지 않느냐 느낍니다.
(2) 골목길 할매와 할배
ㅈ대학교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집으로 돌아가 할 일이 산더미같고, 어제부터 몸살이 돌아 얼른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지만, 오늘처럼 볕이 좋을 때 골목마실을 안 하면 두고두고 안타까워 하리라 생각하면서 버티어 보기로 합니다.
마침 오늘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으슬으슬 추운 몸은 더 고단합니다. 그러나 송림4동을 거쳐 도화3동 골목집 사이사이를 도는 동안, 마음이 활짝 펴고 눈이 맑게 뜨입니다.
틀림없이 이 동네는 말끔하게(?) 밀려 아파트가 될 곳인데, 곧장 내일부터 아파트로 바뀌게 된다 하여도, 이 골목길 사람들은 ‘헐리고 비어 버린 집터’를 치우고 흙을 고르고 땅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곳곳에, 사람 오가는 길자리를 뺀 모든 ‘빈 집터’가 골목밭이 되어 있습니다.
.. “나 같은 거는 사람도 아잉기 농띠처럼 죽지도 않고 니 짐떵어리다, 니 짐떵어리.” “너 없을 때 내가 그만 칵 죽어 삐리야 이도 저도 안 보고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나 땜시 니가 딴 살림 함스로 두벌 고생하는 거 내가 눈을 감아야 안 보지.” 자식이 집에서 부모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간이 남아돌 때 하는 것도 아니요,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도 통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정신을 놓고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본정신일 때 자식 보기 미안하고 똥오줌 범벅인 이부자리가 창피해서 하는 면피용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저런 극단의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심정은 어머니 건강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어무이, 어무이가 나 어릴 때 기저귀 갈아 채우고 똥걸레 다 빨아 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몇 년 동안을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그거 어머니한테 갚아 드리는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애 키울 때는 다 그라지. 앙 그라는 사람 누가 있노.” “마찬가지죠, 어머니. 자기 어머니가 나이 잡숫고 몸 아프면 자식이 다 그라능기라요. 오줌 누믄 옷 갈아입히고 똥 묻으믄 빨아드리고요.” “요새 세상에 그라는 사람이 오대 있노. 지 밥 묵끼도 바쁜데.” “아이 차암, 옷에 똥오줌 누시는 사람보다 그거 빨 수 있는 사람이 몇 배 행복한 거예요. 저 아무리 고생한닥캐도 어머니하고 안 바꿔요, 절대.” .. (210∼211쪽)
길그림책에는 ‘도화3동 20번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눈앞에 펼쳐진 도화3동 20번지는 딱 한 집만 남고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저는 도화1동에서 태어났으니 도화3동하고는 그리 애틋한 느낌이 없다 할 수 있지만, 제가 태어난 바로 이웃 동네인 까닭에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빈 들녘 아닌 허물어 쓸려나간 집자리에 멀뚱멀뚱 섭니다.
아직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무전봇대를 쓰다듬습니다. 도화3동 나무전봇대까지 하면, 인천 옛 도심지에서 송림1동과 내동과 중앙로2가까지 해서 저로서는 네 번째로 찾아낸 나무전봇대입니다. 조금 거닐다 보니 송림4동에 나무전봇대가 두 군데 더 남아 있습니다. 하루 사이에 나무전봇대를 세 군데나 보게 됩니다.
나무전봇대 살아남은 둘레로도 어김없이 텃밭이 일구어져 있습니다. 고추를 심고 푸성귀를 심었으며, 아직 싹이 돋지 않아 무슨 씨를 심었는지 모를 밭이랑이 그득그득 보입니다.
빈 집자리에 동그랗게 꽃밭을 일구기도 합니다. 버려진 꽃그릇에 한 포기씩 심긴 고추줄기가 싱그럽습니다. 그 위로 다닥다닥 붙은 빨래집게와 빨래줄을 바라보면서, 당신님들 마지막 삶자락 이곳에서 밀려나게 될 마지막 그때까지 ‘나무 심는 사람’처럼 ‘골목길 텃밭 일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들 손길을 가슴 찡하게 느낍니다.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바지런히 담으며, 송림4동과 도화3동 둘레에서 대학생으로 배우는 이들이 이 삶터를 꾸밈없이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무엇인가 가슴에 고이 껴안는다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뒤로 밀렸다. 거추장스런 짐덩어리가 되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가슴에 그 잘난 카네이션 한 송이가 대롱거리다 만다.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든여섯의 몸 불편한 어머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 장례식장에서 울컥울컥 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잔치를 하고 싶었다 … 면사무소에 가도 그렇고 병원에 가도 그렇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간병인도 그렇고 하물며 우체부 아저씨도 그랬다. 여든여섯인 우리 어머니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어디가 아픈데?” “이거 아니야. 할머니, 주머니 다시 찾아봐요. 다른 도장 없어?” 나이 잡수시고 몸 어딘가가 불편한 노인을 대하는 건강한 사람들의 태도는 단순한 무시를 넘어서 무례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호호백발 할아버지 환자에게 반말을 하던 어느 대학병원 간호사는 “친근하게 하느라고 그런다”며 자기들의 반말을 변명했다. “아, 그래? 반말하니까 할아버지도 친근해서 좋다고 그러더냐?” 내가 바로 받아쳤더니 그 간호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 (150∼151, 155∼156쪽)
곳곳이 허물린 집이라 어찌 보면 으스스한 동네이지만, 길바닥에 자잘한 쓰레기 나뒹굴지 않습니다. 집마다 문간에 쓰레받이와 빗자루가 놓여 있는데, 여느 사람들이 안 보는 때에 골목집 할매와 할배는 부지런히 쓸고 치우고 하셨을 테지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당신 집을 사랑하고 당신 동네를 아끼는 마음으로.
저잣거리 길바닥장사라도 할 기운마저 남아 있지 않을 듯 구부정한 할매와 할배가 곡괭이를 들고 빈 집자리 돌을 고른다든지, 호미와 괭이로 밭을 일군다든지, 그러면서 푸성귀 몇 손을 거두어들인다든지 하는 모습이란 바로 당신님들 스스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을 당신님들 딸아들한테 기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님 마지막 삶을 알차고 싱싱하게 꾸릴 수 있음을 갖은 몸뚱이로 드러내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좀 건조했다. 《노년기 정신장애》는 치매 중에서도 혈관성치매인 뇌졸증이나 우울증 같은 증상에 대해서는 도움이 될 책이다. 그러나 노년기의 심리변화나 노년기 적응의 과제 등은 너무 도식적이었다. 책 구성이 논문처럼 딱딱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없고 ‘노인기계’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실용서 같았다는 말이다 .. (102쪽)
햇볕에 빨래를 말립니다. 길가 빨랫줄에 빨래를 넙니다. 오가는 이웃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집마다 문간에 마련한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니 걸상은 모두 비어 있습니다.
이제 이곳 이 골목이 죄 사라질 판이 되자, 민속학을 한다느니 국문학을 한다느니 지역학을 한다느니 건축학을 한다느니 사진을 찍는다드니 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할매와 할배한테 ‘이 동네에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며 부산을 떨곤 합니다. 주말이 되면 인천 골목길은 서울 둘레에서 사진 찍으러 나들이 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합니다. 다만, 인천역 차이나타운과 배다리 헌책방골목 언저리와 북성포구 둘레에서 맴돌 뿐이지만, 어찌 보면 ‘사라지거나 없어질 즈음’ 되니 뒤늦게나마 한 장쯤이라도 건져 보려고 찾아드는 사람으로 어수선합니다.
할매와 할배는 난데없이 모델이 되고 뜬금없이 무대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할매 이름과 할배 이름을 여쭈던 젊은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할매 나이가 얼마이며 할배 이름이 무엇인가를 여쭈는 젊은이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고작 한두 번 찾아와서 듣고는 끝입니다. 할매 할배 스스로 오래도록 풀어내는 긴 나날을 듣기보다는, 곶감 빼먹듯 알짜가 될 법한 몇 마디만 얼른 듣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몸짓들입니다.
..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똥이 발에 밟혔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어머니 얼굴이 반쪽이었고 훨씬 굵어진 주름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 곁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머니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 그것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어머니 어깨를 감싸고 꼭 안았다. 울컥하고 울음이 솟았다. 어머니가 천천히 돌아앉으며 내 팔을 잡았는데 미끈거리는 똥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어머니 얼굴에 볼을 대고 속삭였다. “어무이 똥재이.”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그러자 눈물이 볼을 타고 굴러 내렸다. “어무이 똥박사∼” 소리를 높여 말하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알아들었나 보다. 어머니 굳어 있던 얼굴이 풀렸다. 어머니도 내 웃음에 감염되었는지 따라 웃었다. “어무이 똥대장∼” 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똥 묻은 상대를 손가락질해 가며 마구 웃었다. 불을 환히 밝히고 보니 여기저기 발린 똥덩이들이 몇 년 잘 묵은 된장 같았다 .. (49쪽)
골목마실을 하면서 옆지기와 아기를 생각합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우리 옆지기와 아기가 우리 삶터인 골목길을 몸으로 마지막으로 부대낄 요 몇 해를 생각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와 형을 낳아 길렀을 그 옛날 이 골목길 자취를 떠올립니다.
할매 할배와 저하고는 아무런 사이가 아닐지 모르나, 어쩌면 이웃 사이였을는지 모릅니다. 골목마실을 하며 할매 할배한테 고개숙여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일부러 말을 섞지 않습니다. 저절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눌 뿐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제가 이 동네에서 태어났을 때 이쁜 아기가 태어났다며 기뻐해 주었을는지 모르고, 제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저런!’ 하면서 일으켜세우고 빨간약을 발라 주었을는지 모릅니다.
한 목숨은 늙어 쭈그렁뱅이가 되었습니다. 한 목숨은 아기에서 ‘아기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3) 《똥꽃》이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전희식 님이 농사짓는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 돌보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냅니다. 아니,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라기보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 해야 옳겠구나 싶습니다. 늙어서 죽을 날을 코앞에 둔 어머니 똥오줌을 치우고 밥해 먹이고 ‘좋은 데’ 찾아 함께 놀러 다니는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구나 싶습니다.
.. 어머니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노인이 되면서 정신을 살짝 놓은 덕분에 저렇게 남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식 흉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맨정신이라면 저럴 수 없을 것이다. 분노는 더욱 내면화되고 화석처럼 굳어져 병을 키울 것이다 .. (138쪽)
전희식 님은 당신이 어린 날 어머니가 당신 똥오줌을 치워 주고 먹이고 키웠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지 않습니다. 전희식 님 또한 늙은 할배가 될 줄을 알고 어머니를 보듬지 않습니다.
그저 똑같은 한 목숨으로서 어머니를 사랑할 뿐입니다. 어디 먼 데에서 나누는 사랑이 아닌,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할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 “빼뿌재이 나왔네. 저거 생주리 해 묵어도 좋고 삶아서 된장 끓여 묵어도 된다.” “이거 질경인데요?” “빼뿌재이라. 내가 빼뿌쟁이도 모륵까이!” 이 외에도 ‘나시래이(냉이)’나 ‘질금다지(빌금다지)’ 등의 봄나물 이름도 익혀 나갔다. 어머니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 있는 것은 도시의 세련된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종 전기제품과 거기에 딸린 리모컨들은 귀신 붙은 방망이였고, 가스레인지나 진공청소기, 믹스기도 만지기가 무서웠다 .. (70쪽)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나날이 새로움을 봅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배웁니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도 젊은 아들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서로서로 새 세상을 보고, 서로서로 새 날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되는 하루를 맞이하고, 같이 얼싸안으면서 시골살림을 꾸립니다.
.. 아이들도 어른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것이 시골일이고 생태 집짓기다. 도시일과 달리 힘이 세건 신체조건이 열악하건 다 조건에 합당한 일거리가 있는 게 시골일이다. 그래서 누구도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자부심과 어른들의 뿌듯함은 최대치가 된다 …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야 한다. 손빨래를 하면서 빨랫감 하나하나에 얽힌 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된다 …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 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이다 … 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일이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한다 … 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 (24∼25, 32쪽)
섣부른 목소리로 ‘늙은 어버이 모시자’고 외치는 《똥꽃》이 아닙니다. 늙은 어버이 똥은 꽃과 같다고 내세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려는 《똥꽃》이 아니요, 못난쟁이는 못난쟁이대로 즐겁다는 이야기를 값싸게 팔아치우려는 《똥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참살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선 자리에서 찾아내기를 바라는 《똥꽃》입니다. 내 몸과 마찬가지로 내 이웃 몸과 내 식구들 몸과 내 동무들 몸을 사랑할 슬기로운 길을 찾자는 《똥꽃》입니다. 낮은 목소리도 아니요 높은 목소리도 아닌 《똥꽃》입니다. 어울리는 삶, 땅에 발을 디딘 삶, 하늘을 우러를 줄 아는 삶을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픈 《똥꽃》입니다. (4342.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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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09-04-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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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보다 따뜻한 책
가만히 있어도 눈물겹도록 좋은 봄날이다. 좋은 책의 요건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대책 없이 밀려드는 감동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감동’이란 것이 문학적 장치일수도 있겠고, 지식에 대한 갈구일수도 있겠고, 진리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겠다.
전희식의 <똥꽃>을 읽으며 얼마나 많이 웃고 울었는지. 나도 모르게 피어나는 웃음과 뭉클해지는 순간을 여러번 경험하고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언젠가 우리의 부모는 늙는다. 우리도 언젠가 부모의 모습이 된다. 장수하고 계시는 나의 두 분 할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두 분 다 모진 세월을 감내하고 살아오셨다. 특히 나의 외할머니는 저자의 어머니처럼 나이 마흔 즈음에 남편을 여의고 육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몇 해 전 문지방에서 다리에 힘이 없어 고꾸라지는 사고로 튼튼하던 이가 많이 손상되어 응급실 신세를 진 이후로 할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셨다. 이대로 할머니가 잘못되시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었는데 점차 회복하셔서 이젠 예전의 기운을 차리신 것 같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다리에 힘이 없어 문지방을 넘다가도 그리 크게 다칠 수 있구나,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을 하시는 터라 우리 자매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우리는 늘 심부름을 하고, 늘 혼이 났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친할머니가 더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외할머니가 우리를 돌보느라 참 고생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이 모여 화투라도 치려고 하면 어디 가서 오지도 않아 할머니 애를 많이 태웠다 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새로운 기억들이 차지하는 탓인지 별로 남아있지 않다. 호되게 야단치시던 무서운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제 얼굴에 그어진 수많은 주름과 더불어 약한 모습뿐인 할머니가 그저 짠하다. 그만큼 우리는 자랐고 할머니는 늙으셨다.
노인들도 그걸 안다.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기가 죽어있다. 시선도 멀찌감치 밖으로 향하는 때가 많다. 혹 실수라도 해서 자식이 난처해지지는 않을지, 또는 자기가 곁에 있는 것을 자식이 창피해하지는 않을지 눈치부터 살핀다. 자식을 따라온 부모가 행사장 구석에서 모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자꾸 어린애처럼 보채는 것을 많이 봤다.
언제 끝나냐고, 왜 이런 데 데리고 왔느냐고, 부모 구경시키려고 데려왔냐면서 집에 어서 가자고 자꾸 보채면 자식도 짜증이 난다. 방에만 있는 게 딱해서 바람 좀 쐬라고 모시고 나왔는데 그걸 못 참고 그러느냐고. -74쪽
노인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떤지 가감 없이 잘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할머니는 외롭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지만 노년의 외로움이 더 애처로운 것은 진정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하겠다.
책 속에는 자연이 있고, 사랑이 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다. 그 속에서 가늠하기 힘든 감동이 켜켜이 녹아 있다. 저자와 어머니가 구사하는 사투리는 시골집 아랫목보다 더 따뜻했다. 싱그러운 봄날, 햇살보다 더 따뜻하고 눈부신 책을 만나 행복하다.
이 책은 자식들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 뿐이다. 부모가 가장 편해서 온갖 투정부리고 홀대하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부모와 조부모의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게 하고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몸으로 행동하라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우리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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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차 2008-03-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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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목: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저자: 전희식, 김정임
출판년도: 2008년
1. 요약 (Summary)
귀향,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닌 살러 가는 길
전북 장수의 시골 농부이자 생태운동가인 전희식은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노모 김정임 여사를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모셔 온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의 손발을 묶어두거나 약물로 통제하려 했고, 아들은 이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자연치유>의 과정이라 명명하며 시골 흙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아들이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도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삶을 마주하려는 철학적 실험이자 투쟁이었다.
<똥꽃>의 의미와 대소변의 철학
책의 제목인 <똥꽃>은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소재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일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다. 어느 날, 아들은 방바닥에 배설된 어머니의 똥을 치우다가 문득 그것이 더럽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잘 먹고 잘 소화시켜 배설한 건강한 똥은 냄새조차 구수하며, 샛노란 색깔이 마치 꽃처럼 예쁘다고 느낀 것이다. 작가는 똥을 생명의 증거이자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고리로 바라보며, 어머니의 치매를 <벽에 똥칠하는 병>이 아니라 <똥꽃을 피우는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처방전
저자는 어머니에게 현대 의학의 약물을 끊게 하고, 대신 현미밥과 채식 위주의 식단, 맑은 공기, 그리고 끊임없는 스킨십과 대화를 처방한다.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대신 수시로 요강을 대령하며 배변 훈련을 시키고, 잊혀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밤새 옛날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고된 간병에 지쳐 어머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머니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불효>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곧바로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며 참회하고, 어머니와 함께 울고 웃으며 화해한다. 이 과정은 일방적인 돌봄이 아니라, 모자가 서로의 영혼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쌍방향의 소통으로 기록된다.
어머니의 기록, 김정임의 목소리
이 책의 저자가 <전희식, 김정임> 두 사람으로 표기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책 곳곳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툭툭 내뱉는 말들과, 정신이 맑을 때 남긴 짧은 기록들, 그리고 어머니의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 죽으면 서러워서 어쩌냐>라고 아들을 걱정하다가도 금세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치매가 인격을 지우는 병이 아니라 단지 표현 방식을 바꾸는 병임을 보여준다.
2. 평론 (Critique)
현대 사회의 <고려장>에 대한 통렬한 반성
<똥꽃>은 고령화 사회와 치매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현대 사회가 노인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현대의 요양병원과 시설들은 효율성과 편의라는 이름 아래 노인들을 격리하고 통제한다. 저자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하고,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이 책은 <시설>이 아닌 <관계> 속에서, <통제>가 아닌 <공존> 속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증명하는 생생한 보고서다. 이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이 지배하는 돌봄 노동의 현주소를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다.
치매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치매는 흔히 <가족의 재앙>이나 <인격의 상실>로 여겨진다. 그러나 전희식은 치매를 <제2의 유아기>로 재정의한다. 어머니가 아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슬퍼하기보다, 아들이 부모가 되어 어머니를 다시 양육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기이한 행동들(예를 들어, 물건을 감추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온 고단한 인생의 역사가 표출되는 언어로 해석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관점은 치매 환자를 <치료의 대상>에서 <이해의 주체>로 격상시키며, 질병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솔직함이 주는 거대한 울림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저자가 자신을 <효자>로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똥을 치우며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어머니가 미워 고함을 지르기도 하는 자신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어머니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들었다가, 그 앙상한 다리를 보며 통곡하는 아들의 모습은 성인군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평범한 인간의 고뇌를 보여준다. 이러한 처절한 솔직함은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고통과 사랑에 깊이 공감하게 만들며, 책의 진정성을 극대화한다.
생태주의적 삶과 죽음의 미학
농부이자 생태운동가인 저자의 정체성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그는 어머니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만들어 밭에 뿌리고, 그 밭에서 난 작물로 다시 어머니를 먹인다. 어머니의 생명이 자연의 순환 고리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이 과정은, 죽음조차도 소멸이 아닌 자연으로의 회귀임을 역설한다. <똥꽃>이라는 제목은 배설물조차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상징하며, 가장 비참해 보일 수 있는 치매 노인의 말년을 가장 숭고한 생태적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결론: 관계의 회복을 통한 구원
결국 <똥꽃>은 치매 극복기가 아니라, 모자(母子) 관계의 완성기다. 어머니는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서서히, 그리고 평온하게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고, 아들은 어머니를 통해 삶의 근원을 배우고 자신의 내면을 치유했다. 이 책은 치매라는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약물이나 시설보다 더 강력한 치유제는 결국 <사람의 온기>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임을 묵직하게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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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2008) — 1,000단어 요약 + 평론
I. 내용 요약 (약 600단어)
전희식·김정임의 『똥꽃』은 농부이자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시골집에서 보낸 몇 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의학적 조언을 중심에 두지 않고, 농부의 시선으로 본 자연 치유·노년의 몸·인간관계·마을 공동체의 역할을 일기처럼 묘사한다. 책의 핵심은 “병을 고치려는 투쟁”이 아니라, 치매 상태의 어머니가 살아가는 그대로의 세계 속으로 저자가 들어가는 과정이다.
1. 치매 어머니의 세계
어머니는 일반적인 치매 증상—기억 소실, 시간·장소 혼동, 반복 행동—을 보인다. 저자는 이를 “이성이 사라지는 과정”으로 보지 않고, **‘살아온 세계가 흩어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읽는다. 어머니는 과거와 현재를 섞어 말하고,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함께 기억하며, 때로는 “지금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저자는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기이한 세계를 하나의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2. 자연 치유—흙, 풀, 바람, 햇빛
저자는 의사가 제시하는 약물 중심의 접근보다, 흙과 풀밭, 바람과 햇빛 속에서 어머니가 머물 때 가장 안정적이라는 경험을 여러 장면을 통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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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둑에서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면 혼란이 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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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옆에서 햇빛을 쬐면 표정이 온화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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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천천히 걸으면 불안이 가라앉는다
저자는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단지 오랜 농부로서 인간의 몸이 자연의 리듬에서 이탈했을 때 병이 생기고, 다시 자연에 접속할 때 평정이 돌아온다는 감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3. ‘똥꽃’—노인의 몸, 생리, 그리고 존엄
제목이기도 한 “똥꽃”은 노인의 대소변 문제를 돌보는 경험에서 나온 상징이다. 어머니는 대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저자는 그 대변을 치우면서 한 번도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대변을 생명의 일부, 즉 “씨앗이 지나가는 자리”로 표현한다. 노인의 치매와 생리적 퇴화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생명 순환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귀환이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4. 농부로서의 돌봄—가족과 마을
도시형 돌봄이 가족 단위의 고립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시골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돌봄의 일부를 함께 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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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어머니를 살펴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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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 만난 지인이 어머니 상태를 공유하고 조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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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어른들은 치매를 특별한 병으로 보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통해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리듬 속에서 다뤄질 때 덜 고통스럽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5. 죽음과 포기하지 않는 삶
어머니의 정신적 퇴행은 점점 깊어지지만, 저자는 그것을 “사라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 안의 생명성—밥을 먹는 손, 햇빛을 향하는 얼굴, 부르는 이름에 반응하는 표정—을 매일 새롭게 발견한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단계로 묘사된다.
II. 평론 (약 400단어)
1. ‘치매 = 병리적 손상’이라는 도식을 전복한다
의학적 관점에서는 치매는 ‘기능의 저하’이지만, 이 책은 어머니의 상태를 **“또 다른 삶의 양식”**으로 바라본다.
이는 오늘날 돌봄 윤리에서 중요한 논의—
-
치매인의 세계를 “왜곡된 기억”으로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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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를 존중하는 것
—과 맞닿아 있다.
이 관점은 세진님이 정순님과 겪는 presence hallucination을 “비현실적인 오해”가 아니라, 그분이 체험하는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접근과 매우 가깝다. 『똥꽃』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2. 자연치유—과학적 치료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책에 등장하는 흙, 햇빛, 들길, 바람은 ‘근거 없는 민간요법’이 아니라, 정서 안정·불안 감소·수면 개선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환경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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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의 agitation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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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owning 증상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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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각성 리듬 회복
등은 자연 환경에서 잘 관찰되는 효과다.
하지만 책은 약물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비판적 균형이 다소 부족하다.
루이소체치매(LBD)처럼 hallucination·delusion이 핵심 증상인 경우, 자연환경만으로는 조절이 어렵고, Donepezil·Rivastigmine·Memantine 등 약물의 효과가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약을 피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자연에서의 돌봄은 치매인의 몸과 정서를 가장 안정시키는 기본 환경”
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3. 노인의 ‘비위생적인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재해석
똥, 소변, 실수, 반복된 질문, 이해 불가능한 말…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슬픔’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꽃’**으로 말한다.
이는 돌봄자의 정서적 재구성과 깊이 연결된다.
세진님이 정순님의 변화와 혼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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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 붕괴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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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세계가 바뀌는 과정”
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와도 닿아 있다.
4. 한국 농촌 공동체 돌봄의 가치와 한계
책은 전통 공동체 돌봄의 힘을 보여주지만,
오늘날 농촌 고령화·도시화 이후 현실에서는 재현이 어렵다.
따라서 『똥꽃』은 하나의 이상적 모델이자, 돌봄의 ‘가능한 형태’를 상상하게 하는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
총평
『똥꽃』은 치매인을 “정신이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따뜻한 기록이다.
현대 의학적 치료와 대립시키기보다, 정서 안정·존엄·관계성·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특히 세진님처럼 배우자를 오롯이 돌보며 매일 ‘변화하는 세계’와 마주하는 분에게,
이 책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재구성해주는 치유적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원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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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님 상황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똥꽃 스타일의 자연 돌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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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이 쓸 수 있는 치매 돌봄 일기 포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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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증상(like hallucination, delusion)에 대한 LBD 맞춤형 환경요법 제안
도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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